시어머니의 시어머님의 치매, 그리고 3년의 간병
시어머님의 치매, 그리고 3년의 간병
– 시어머님을 끝까지 모셨던 간병의 시간, 무너짐 속에서 지킨 효심과 책임
결혼 후, 첫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님의 어머님, 그러니까 시할머니께서 집에 들어오셨다.
치매를 앓고 계셨다.
장남의 집으로, 장남의 아내에게 당연하다는 듯 “네가 우리 엄마를 모셔라”라고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이 맏며느리의 도리라 믿었기에 말이다.
시할머니는 치매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이 달라지셨다.
어린아이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은 남자처럼 호통을 치고, 또 어떤 날은 힘없이 늙은 어른이 되어 멍하니 앉아 계시기도 했다. 한 날의 장사처럼 힘 세지시더니 밖으로 뛰어가시기도 해 남편이 찾아 모시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런 시할머니를 어머님은 매일, 새로이 맞이하셨다.
변덕과 불신과 오해 속에서도, 어머님은 따지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시할머니는 늘 배가 고프다고 하셨다.
아버님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불러 어머님을 흉보셨다.
“저년이 나 밥도 안 주더라. 배가 고파 죽겠다.”
그 말만 들은 아버님은 어머님께 “밥 드려라”라고 하셨고, 어머님은 이미 차려드린 밥을 또다시 새 밥으로 다시 지어 상에 올리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 순간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셨다.
시할머니의 옷은 철마다 예쁜 가디건으로 갈아입히셨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주시고, 목욕을 시킨 후엔 손수 로션을 발라 피부가 트지 않게 살피셨다.
늘 단정하고 곱게, 치매를 앓는 어르신 중 가장 정갈하고 아름답게 시할머니를 모셨다.
그렇게 3년을 간병하셨다.
벽에 대소변을 바르던 날도, 밤잠 설치던 날도
어머님은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신 적이 없으셨다.
사람들이 장난처럼 던지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라는 말을 직접 체감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님은 평생 그 말을 제일 싫어하셨다.
그러나 정작 그 많은 자식들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치매라는 것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님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셨다.
그리고 후에 마지막을 준비하던 염습의 날,
염을 하던 분이 “어디서 이렇게 잘 모셨느냐, 참 곱다”라고 감탄했다.
그제야, 어머님의 3년이 말없이 증명되었다.
어머님은 그렇게 시할머니를 정성으로 천국까지 모셔드렸다.
그리고 그 이후, 어머님의 몸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짊어진 돌봄의 무게,
삶을 통째로 내어준 시간 속에서
어머님은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다.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에
이미 무너지고 있던 자신의 몸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