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진심으로 피워낸 글의 기록
나는 늘 소극적인 아이였다. 낯선 환경에 놓이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쪽이었다. 대학원 과제물에 내 기질을 돌아보며 쓴 적도 있다. 나는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에, 또래보다 왜소한 셋째 딸로 자랐다. 맞벌이 부모님 아래에서 애착의 공백도 조금은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주눅 들고,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글이었다. 종이 위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마음을 풀어낼 수 있었고, 글은 나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해 주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불러주셨던 애칭 꽃내처럼, 글은 내 안에 숨어 있던 향기를 조금씩 피워내 주었다.
브런치와의 만남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플랫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숨죽인 마음을 펼칠 수 있는 창이었다. 용기를 내어 ‘지숙수담’이라는 이름으로 첫 글을 올렸을 때, 손끝이 떨릴 만큼 두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글에 반응이 돌아왔다. “잘 읽었다”는 짧은 댓글 하나, 하나둘 늘어나는 구독자 수는 글이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주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그렇게 쓴 글이 40편을 넘겼다. 소극적이던 내가, 글로 세상과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글을 배운 적이 없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을 오래 곱씹으며 조금씩 따라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내 글은 서툴고 문맥이 매끄럽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만 존재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는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진심을 담아낸다. 나는 그 진심이 언젠가 닿을 거라 믿는다. 글 앞에서 머뭇거리면서도 더듬더듬 적어 내려가는 순간조차도, 나에게는 용기이고 도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게 완벽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꽃내처럼 조심스럽게 피어나며 배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어서다. 나는 어린이집 현장에서 소극적이거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 아이들은 때로는 눈치를 보고, 때로는 울음을 삼키며, 세상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다짐했다. “이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아이들이 세상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역시 소극적이고 두려움이 많은 성격이지만, 그런 나도 어른이 될 수 있음을,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내 삶의 가장 큰 목표이자, 글을 쓰는 이유다.
그리고 내 글쓰기의 또 다른 시작점은 ‘가족’이다. 치매로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시어머님께 손 편지를 써드리면, 어머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은 내게 큰 위로였고, 동시에 새로운 꿈이 되었다. 언젠가 어머님의 일생을 책으로 써드리고 싶다. 누군가의 삶을 정성스럽게 대필해 주는 작가, 그것이 내가 꿈꾸는 또 다른 길이다. 어머님의 기억을 꽃잎처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피워내고 싶다.
브런치 10주년을 맞아 짧은 내 작가로서의 발자취를 돌아보니, 나의 길은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다. 화려한 작가의 꿈과는 다르지만, 글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글은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세상과 연결해 주고, 나와 같은 아이들을 위로하며, 사랑하는 어머님의 삶을 이어주는 힘이 된다.
앞으로도 나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잘 쓰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나의 글을 읽는 이가 단 한 사람뿐이라 해도, 그 마음이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빠는 어린 시절 나를 꽃내라고 불러주셨다. 그 애칭 속에는 늘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이름을 글 속에 새겨가며 살아간다. 아빠의 꽃내였던 내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꽃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밝혀주고, 그들의 하루에 작은 꽃향기를 더해주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글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