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단단한 믿음의 사람
8장. 작고 단단한 믿음의 사람
– 눈물의 기도로 가족을 품어주신 어머니
힘겨운 삶 속에서도 어머님의 신앙은 한결같았다.
없는 살림 속에서도 십의 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절기헌금까지 절대 빼놓지 않으셨고, 교회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 봉사하셨다.
“주는 게 남는 거야. 주의 일에는 아낌이 없어야 해.”
어머님의 삶은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믿음의 본이었다.
교회의 목사님은 어머님의 친동생, 남편의 외삼촌이셨지만, 어머님은 늘 “우리 목사님”이라 불렀다. 동생이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이니 그 앞에서는 순종하는 성도로 늘 겸손하셨다. 교회 건축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살림살이도 빠듯했던 시절, 어머님은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으셨다.
한 번은, 손바닥만 한 빨간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오셨다. 몇 년간 모은 동전과 구겨진 천 원짜리들.
“이거, 이번에 전도사님 이사하시잖아. 가는 길에 뭐라도 도움 되면 좋겠다.”
그게 어머님 마음이었다.
주의 종이 어렵게 떠나는 길에, 가진 것을 다 내어주시는 따뜻한 믿음.
“주의 종에게 늘 가진 거 전부를 드려야 복을 받는 거란다. 그래야 우리가 잘 살아.”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말뿐이 아닌 삶으로.
나는 어머님을 따라 신앙을 배워갔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주일예배… 늘 그 자리에 계신 어머님 옆에서
신앙이 내게도 익숙한 공기처럼 자리 잡아갔다.
우리 가족은 모두 봉사하는 가정이었다.
어머님은 식당봉사며 청소, 준비위원회 일들에 언제나 빠지지 않으셨고,
나는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모두 모태신앙으로 자라났다.
어머님의 기도는 늘 조용했다.
부엌에서, 방 한편에서, 예배당 구석에서
입술을 달싹이며 드리던 그 기도가
우리 가족 모두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우리 가정은
아버님은 장로, 어머님은 권사,
나와 남편, 시누이와 그 남편 모두 집사로
각자의 교회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시작과 뿌리는, 바로
작고 단단했던 믿음의 사람,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런 어머님은 지금도
자신의 인지력을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
어디에 계시든, 주일이 되면 예배는 반드시 드리셔야 했다.
지금 머무르시는 요양원에서도 매주 주일이면
남편은 어머님을 예배실로 모셔다 드린다.
눈빛이 흐려지고, 기억이 흩어져도
찬송가 한 소절, 익숙한 기도소리 앞에서는
정신을 또렷이 가다듬고
두 손을 모으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아직도, 아니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 믿음의 사람’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