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첫 책 읽기의 시작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니,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의문과 의심이 빗발치듯 했으나 군말 없이 와이프가 구해온 책을 이제 막 봉긋이 올라온 작은 배를 마주 보고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잠은 오고 거의 매번 반 이상 졸면서 책을 읽어주다 와이프 핀잔과 잔소리를 맘껏 들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 아이의 눈에 초점이 제대로 맞기도 전 '초점 책'인가 하는 핸드메이드로 와이프가 직접 제작한 책을 읽어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색 흰색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을 아이 옆에 놓아두곤 했다. 그렇게 아이는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시작했다.
아이가 크고 옹알이를 할 때, 그리고 기어가고 또 걸어갈 때는 조금 다른 형태의 책을 제공해 주었다. 소리가 나오는 '사운드북'이 바로 그것이다.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소리, 동물소리 또는 악기소리가 아닌 '영어'라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아이는 abc송,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ead and shoulders.. 등 영어로 된 사운드북을 읽고 신나게 따라 불렀고 그때 아빠의 만족감은 한 권에 2만원 3만원이 넘어가는 책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은 영어라면 학을 뗄 정도로 싫어하고 아직도 매일 엄마와 싸움 중이다. 그놈의 파닉스 때문에..
다음으로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집에는 다양한 과학동화 시리즈, 이야기 시리즈, 성교육, 경제교육 시리즈 등 각종 '전집'들로 매일 집 바닥이 어지러웠다. 조금은 지겹도록 본 책들, 직사각형 모양의 단단하면서도 일정한 두께의 반짝거리는 표지를 가진 책, 바로 전집이다. 나는 주로 침대에서 두 아이와 함께 누워 책을 읽어주었는데 때로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변신하여 무섭게 소리를 내지르다 2살짜리 동생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라?, 이거 괜찮은데?' 그렇게 나는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아이를 놀리는 게 더 재미있어 아이를 울렸다 달랬다, 다시 울렸다 달랬다는 반복하는 장난꾸러기 아빠이기도 했다.
읽어주는 것뿐 아니라 책으로 신나게 놀기도 많이 놀았다. 아이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쏙쏙 빼는 것이 재미있었던지 깔깔거리며 정신없이 책을 뺐고 아빠는 흩어진 책을 다시 정신없이 주워 담았다. 책으로 만든 기찻길, 책으로 만든 벽돌집, 책으로 하는 게임들은 이제는 다시 못 볼 추억거리가 되었다. 아이와 나, 우리는 그렇게 책으로 놀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컸을 때의 일이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책에 조금 관심을 붙일 때 이 시기 나는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기이기도 했다. 너무 피곤하고 또 조금은 귀찮았지만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것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내가 구수한 사투리로 책을 읽어줄 때 양팔에서 책을 보다 사르륵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느낄 때'마다 나는 행복했다. 내 눈은 책을 보고 입은 글자를 읽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잠이 들면서 몸을 슬쩍슬쩍 뒤척였다. 그때 나는 드디어 '이 녀석들이 잠이 드는구나', '이제 맥주 한잔 하겠구나' 라며 왠지 모를 해방감까지 느끼곤 했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짜릿함이다.
가끔씩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때는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질 때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내 입이, 정확히 말하자면 내 혀가 꼬여 했던 말을 또 하고 읽던 글을 또 읽고 이상한 잠꼬대까지 섞인 엉망진창인 책 읽기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웃으면서도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아빠 일어나!'를 외치며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내리꽂았다. 이때부터 아이들 주먹은 굉장히 아팠다. 아이들은 그렇게 힘이 세지고 또 몸집은 점점 커졌다.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인 된 두 아이들은 이제 나와 함께 책을 읽는다.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엎드려 각자의 책을 읽는데 그러다 아이들의 하품 소리가 들리면 나는 자세를 바꾸고 두 머리를 양팔에 야무지게 낀다. 이제부터는 내가 읽었던 책을 이야기로 바꾸어 아이들과 다시 읽는 시간이다. 세상에 이만한 시간이 없다. 최근 내가 푹 빠진 류시화작가님의 인도 여행기를 통해 오늘 밤은 인도에서 만나자는 꿈을 꿔 보기도 하고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이야기를 통해 돼지들이 맥주를 마시고, 두 발로 서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상상해보기도 하며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에 괴로워했던 소위 '학폭' 사건을 짚다 보면.. 둘째는 옆에서 자고 있다.
아이와 책 읽기 10년,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