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철학'

잠들기 전, 철학을 어떻게 이야기해 줄까?

by 고복수


내가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 할 시간을 갖는다면, 애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그의 철학과 바꾸겠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잡스-


아이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중이었다. 문득, 아이들은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꺼냈다.


딸, '철학'이 무엇인 것 같아?


질문할 때는 가능한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짧게, 핵심을 물어야 한다. 딸 키워본 아빠는 다 안다.


아 몰라, 나 책 읽을 거야.


역시나 답은 짧다.


응 그래 맞지..


아빠는 섭섭하다.


그럼, 아들은 어떻게 생각해?


응? 철학? 음.. 배우는 거?


이럴 때면 조금은 다정한 아들이 좋다. 아빠는 드디어 물꼬를 잡았고, 덕분에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질투심에 고개를 돌린 딸도 어느 틈에 곁에 누워있다.


먼저 글자부터 살펴볼까? '철학', '학' 자가 들어가네! 한자시간에 한결이가 배웠던 글자지?


배울 학!


그래! 배울 학이야.


'철학'은 너희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과학과 같은 과목 중 하나라는 말이야 별거 아니야 정말 쉬워. 간단하니 한 번만 들어봐


갑, 을이 따로 없다. 사실 나도 혼자 책 읽고 누워 자면 그만인데 아이들에게 나도 잘 모르는 '철학'을 꺼내는 건 쉽지 않다.


철학은 '나를 돌아보는' 과목, 학문이라는 말이야.


아빠는 손가락으로 딸아이의 볼록 튀어나온 이마,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예쁘고 소중한 이 머리에서 생각만을 잠시 꺼내본다고 상상해 볼까? '윤아의 생각'이라는 것을 침대 위로 살짝 띄워보는 거야. 그리고 너의 생각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의 윤아를 바라보는 거지.


딸아이는 자신의 이마 위에서 천장으로 올라가는 아빠의 손가락을 바라본다.


자 이제 생각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침대 위에 있는 생각이 널 내려다본다는 말이야. 어쩌면 너를 살짝 훔쳐본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볼멘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빠 나는 없어? 나는 왜 생각을 안 해?


하하하 그래 맞아 당연히 한결이도 있지.


누나와 같이 아빠의 손가락이 한결이 이마에서 천장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자! 나에게서 나온 생각이라는 녀석이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결이 윤아를 관찰하는 거야.


너희들이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 행동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해 본다는 거지.


그 말이 ‘나를 돌아본다.’는 말이고 그게 철학이라는 학문이야. 그래서 철학이라는 글자는 밝을 철, 배울 학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를 좀 더 밝게 돌아볼 수 있는 학문. 멋지지 않니?


요즘 한창 엄마와 수학으로 씨름하는 아들이 묻는다.


응 그럼 수학이랑은 많이 다르겠네?


아들, 십이 더하기 오는 얼마지?


음.. 십칠!


그래! 수학은 이렇게 답이 정해져 있지만 철학은 정해진 답이 없어.


왜냐면 나라는 사람은 모두 다 다르거든. 서로 다른 생각들이 저기 천장에서 각자의 자신들을 관찰하면서 바라보기 때문이야.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 철학을 통해 우리는 생각을 하는 훈련,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거야.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면서 듣고만 있던 딸이 질문한다.


그럼 수학이랑 철학은 완전히 다른 거네!


그래 맞아! 하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도 없어. 철학은 어디든 적용이 가능하거든 수학에서 철학을 적용해 볼까?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에이 수학은 답이 있는데 정해진 답만 구하면 끝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철학이 들어가?


아빠는 대답 없이 씽긋이 웃고 일부러 뜸을 들인다.


뭐야 아빠~ 빨리 말해!


여우 아빠는 아이들의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를 기다렸다 살짝 이야기를 다시 던져 놓는다.


윤아가 수학 문제를 풀다고 한다면 여기 이 생각을 다시 천장으로 띄워 올려볼까?


아빠는 톡톡 하고 손가락을 다시 아이의 이마에 두드린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음을 띠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학 문제를 내는 사람의 천장 위로 살짝 올라가서 그 사람을 관찰해 본다는 말이야.


이 문제를 왜 냈을까? 여기는 수학의 어떤 부분일까? 무엇을 묻는 문제일까? 이 문제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뜻은 무엇이지?라고 말이지. 이걸 메타인지라고도 해


아이들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갈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눈이 점점 흐려지지만 아빠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윤아 한결이가 가지고 있는 주식, 애플 있지?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철학을 정말 좋아했어.


심지어 잡스는 소크라테스라는 유명한 철학자와 밥 한번 먹을 시간을 가지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며 안절부절 애달파했거든..


가끔 예리하게 찔러 들어오는 아들이 짧게 묻는다.

근데 아빠 스티브잡스는 죽었잖아


맞아, 사실 두 사람 다 세상에 없는 분들이야.


그리고 알고 보면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살지도 않았어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지 그런데도 스티브잡스는 죽기 전까지도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직접 배우고 싶어 했어.


심지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소크라테스한테 다 줘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지..


와 정말? 그럼 스티브 잡스가 부러워한 사람이, 잡스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그 소크라..라고 하는 사람이야?


그럼!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있었으면 지금 한국 아이돌보다 더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었을걸?


아이들 눈은 다시 반짝인다. 요즘따라 부쩍 유튜브, 틱톡, 인플루언서에 관심을 가진 덕분이다. 하지만 살짝 시계를 살펴보니 벌써 잘 시간이 지났다. 나는 흥분한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불을 다시 정리하고 양팔 옆에 아이들 머리를 제대로 끼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이야.

뭐야~ 그 말은 나도 하겠다.


맞아 아들! 철학은 그렇게 간단한 것으로 시작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지만..


이제 잘 시간이 훨씬 지났네 저기 잠시 띄워둔 너희들 생각들도 다시 불러올까?


아빠는 다시 손가락으로 작은 이마 둘을 톡톡 두드리더니 가벼운 뽀뽀로 마무리한다.


아빠는 오늘 꿈에서 잡스, 소크라테스, 윤아 한결이 이렇게 함께 모여 철학이야기하면서 밥 먹는 꿈을 꿀 꺼야. 잘 자 사랑해


아빠 사랑해


어릴 때는 그리 잠을 안 자고 나를 괴롭히더니 이제는 불 끄고 안아주기만 하면 금방 잠들어 버린다.


아들은 다섯 살이 되어도 말을 잘하지 못했다. 뭔가 자꾸 웅얼거리는데 나는 도통 알아듣질 못했고, 아들은 자기의 말을 이해 못 하는 아빠가 갑갑하고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누나가 곧잘 해석해 주곤 했는데..


그렇게 화만 내던 아들이 이제는 나와 소크라테스, 스티브 잡스, 철학을 이야기한다. 대화가 된다는 것.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다. 소크라테스와의 점심보다 더 크다.


하루하루 조금씩 생각이 굵어지는 아이들. 나에겐 아이들과의 대화가 곧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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