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혼자 남기는 독서일기

by 명희진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라고 하지만 그의 이름은 분수에 넘치게도 판테이다. 존 판테,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계 미국 작가이다. 그는 살아생전 유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 별로 없다. 내가 판테를 좋아하는 건 전에도 말했지만 부코스키 때문이다. 찰스 부코스키와 존 판테는 내 고양이와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 단지 집사인 내가 그에게 이름을 부여할 운명이었을 뿐이고 이제 태어난 지 삼 개월 밖에 안 된 새끼 고양이는 이를 거부할 힘이 없었다.


판테는 브리티쉬 숏헤어다. 전에도 나는 진회색의 브리티쉬 숏헤어를 키웠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삼총사에 나오는, 아토스였다. 우리 가족은 그 아이를 독일 여행 중에 잃었다. 마그더부르그에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호텔에서였다. 1월 7일이었고 새해가 막 지난 후라 고속도로에 차가 많았고 눈이 내렸다. 우리는 밤 11시가 지나 호텔에 도착했다. 그 호텔을 고집한 건 나였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었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도 있었고 펫프렌들리라 고양이를 데리고 숙박하기도 좋았다. 그런데, 그 밤에 도착해서 차 안에서 본 건물은 흉측했다. 호텔 내부는 또 얼마나 낡았는지, 합리적이라 생각한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바뀌는데,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토스도 호텔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료를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어딘가에 숨었다가 우리가 잠들자 고함을 지르듯이 내내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토스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라파엘이 잠깐 안아 든 순간이었고 그건 정말 찰나였다. 아토스를 살리려 행했던 모든 과정이 의미 없음으로 남았고 우린 축 늘어진 육체만 남은 아토스를 데리고 여섯 시간을 달려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화장터를 알아보고 아토스의 죽음을 내내 생각하며 추적했다. 그리고.... 브리티쉬 숏헤어에게 심장병이 유전병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에겐 그의 품종 확인서가 있었고 건강증명서가 있었다. 우리는 유럽 법에 따라 이제 막 삼 개월이 지나 혼자서 화장실 모래도 덮을 줄 아는 기특한 아이를 입양했는데... 단 하나 우리가 몰랐던 것. 브리티쉬 종은 입양전에 심장 유전병 예방접종을 받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 이야기는 또 번외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써 내려가면서도 사실 마음이 아프다. 아토스는 우리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고립된 우리 커플에게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을 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 개월이 지나 우린 판테를 집에 들였다. 판테는 아토스가 죽은 다음 날인 1월 8일에 태어났다. 라파엘은 이를 운명이라 여겼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자기 감상이라고 그를 구박했다. 하지만 은근히 아토스가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오길 바라기도 했다.

어제가 판테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그전보다 철저하게 입양을 알아봤다. 판테의 아빠는 고양이 미남대회 출신이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유전이 꼭 정답은 아닌 듯 판테는 그 미모에 못 미치게 태어났고 그래서 형제 중에 끝까지 남아 우리의 차지가 됐다. 우린 심장병 예방 주사를 맞았고 그 기록을 증명할 수 있는 브리더들과만 접촉했다. 여기서 왜 굳이 브리티쉬 숏헤어여야만 할까라는 의문이 있을 것 같아, 말하자면 그건 그냥 내 취향이다. 나는 이 종이 너무 예쁘다.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특히 이 종의 고양이를 더 사랑하게 됐을 뿐이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의 독서 기록을 쓰면서 왜 내 고양이 자랑을 하고 있을까? 왜 내 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고 있을까? 이 소설이 내게 딱 그랬다. 남의 강아지에 얽힌 이야기를 좀 방대하게 읽은 기분이었다. 읽는 내내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는데, 난 원래 한 번 잡은 책은 끝장을 봐야 하기에 끝까지 읽었다. 뭔가 이것저것 건들다 만 느낌이라, 좀 찝찝했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심히 걱정스럽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기호 작가가 등단했을 때, 학교에 다니던 시기라 그를 대단한 신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유쾌하고 날카롭고 좋은 서사를 쓸 수 있는 작가. 그게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던 이기호 소설가였다. 그래서 이기호 소설가의 이름을 네이버에 쳤고 광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내가 따라 읽지 못한 많은 책을 출간한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 책들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됐다. 읽는다면 아마도 초기작 위주로 다시 한번 읽어볼 것 같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숑 프리제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인 시습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고 슬픔과 삶의 치열함에 고군분투(?)하는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이자 유산인 비숑 프리제 이시봉, 그의 역사와 얽힌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시봉은 이시봉인데, 이시봉을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역사에 관한 이야기랄까...


한번 읽고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가능하지는 않지만, 이 기호 작가의 브랜드를 믿고 독서에 입문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이토록 두꺼운 소설을 추천했던 나는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읽었다. 그리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읽지 않은 책은 추천하지 말아야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했다. 책의 홍보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리디가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사실을 시습이 알게 되는 것도 너무 진짜 드라마 같아서, 실망했다. 수아의 고백을 통해서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목격하게 했을 거다. 그들은 가까이 살고 있고 자주 만난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내내 중요한 사건들이 너무 쉽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시습은 알코올의존증을 보이며 삶에 큰 의욕이 없는 캐릭터지만, 그렇다고 시습이 시봉이 자기에게 온 이유를 따라 가는데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그는 이 소설의 메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모든 메인 캐릭터가 소설의 마지막에 성장할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도 이해 가능한 개연성이 필요하다.


비숑을 키우고 있으면 이 책이 좀 달라 보일까? 그러니까 나는 한때, 코커스 파니엘과 닥스 훈트가 섞인 아이를 키운 적이 있다. 이 아이는 보통 명랑한게 아니어서 언니와 산책을 나가면 언니 무릎을 깨트린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니보다 말랐던 나는 내가 개를 산책 시키는 건지, 개가 나를 산책 시키는 건지 모를 정도로 개에게 끌려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쯤에서 이 아이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좋겠다. 꼬미라 불리던 그 개는, 악랄하게 명랑해서 우리가 학교에 다녀오면 아빠가 아끼던 가죽 구두를 씹어 놓거나 두루마리 휴지를 갈가리 찢어 새로운 침대보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우린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단지 그 아이가 어릴 때 죽을 병에 걸렸었다는 이유로 이 모든 말썽에도 조금도 혼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명랑한 이시봉 씨는 내가 키우던 꼬미보다 명랑하지 않았다.


<소설 속 문장>


"인간의 역사는 사건을 중심에 둔 채 쓰이지만, 동물 혈통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방점이 찍힌 채 기록되기 때문이다." p 96(e-book)


"실제로 그 후 고도이의 삶은 오로지 베로의 후손들, 그 아이들의 평화로운 성장과 번식에 바쳐졌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오해하고 오독하면서 동물들의 삶에 관여한다." p 591(e-book)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발표한 이기호 “모르는 존재와 공존, 인간의 책임 필요”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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