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프란치스카 비어만)

책 먹는 여우를 빌려 말하는 나의 글쓰기....

by 명희진

조카가 여섯 살 즈음에 나는 이 책을 조카에게 선물했다.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하기엔 복잡하고 긴 이야기였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금 조카는 스물다섯이 됐다. 에엥? 스물다섯이라고? 내겐 아직도 아기 같은데, 벌써 이십 대 중반이 돼버렸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의 리뷰를 쓰면서 뭔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에 답답했다. 그건 뭘까. 요새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내 말은 소위 말하는 순소설(특히 장편)을 읽으면서 드라마와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오히려 드라마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가들이 마치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기대를 잔뜩 하고 읽었다가 김이 훅 빠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독자나 작가 혹은 비평가가 있을까 싶어 책을 검색하면 또 그런 사람들을 찾기가 쉬운 건 아니다. 대부분 칭찬뿐이다. 본능적으로 딴지를 몸에 갖고 태어난 나는,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칭찬만 할 수가 없다. 최근에 알게 된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특히 소설에 내가 엄격하다는 거다. 소설을 읽을 때와 다른 글을 읽을 때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내게 다른 이의 소설은 킬링 타임이 아니라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소설을 읽으며 문장을 분석하고 서사의 흐름을 파악하며 사건의 개연성을 공부한다. 이 모두가 이해되지 않으면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다시 읽는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겐 사실, 소설을 읽는 일이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고 항상 독서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요새 느끼는 피로감일 뿐. 좋아하는 작가가 어마어마하고 아직 못 읽은 책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나와 맞는 책을 읽을 때의 희열은 독서를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아마 사랑이 깊어 실망도 큰 게 아닐지.


[책 먹는 여우] 속 여우는 책을 읽고 나면 소금과 후추를 뿌려 자기가 읽은 책을 먹었다. 그런데 그는 가난한 독서가여서 책을 살 여유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 읽고 먹던 여우(강도, 약탈도 한다)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동안 읽은 책 덕에 수려한 말솜씨로 교도관을 꿰어 종이와 펜을 구해 자신이 이야기를 쓰고 그걸 먹는다. 자신이 쓴 이야기로 베스트셀러가 된 여우는 감옥에서도 일찍 나오고 자신이 쓴 양질의 책을 즐겨 먹는다. 그가 파는 책에는 소금과 후추가 들어있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작가란 그런 게 아닐까?

읽다 읽다 지쳐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입 밖으로 꺼내 다시 읽고 고치고 그러다가 또 결국엔 자기가 삼키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새 독서가 조금 지치고 힘들다. 요새는 유럽 어디에 가나 그 나라 말로 번역된 한국 소설을 볼 수 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도 많아서 번역된 작가의 책을 보고 한국어 원본을 찾아보기도 한다. 작가는 많은 데 독자는 없다는 말도 흔히들 한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 보면 작가가 많으니 독자도 많은 것 아닌가? 작가가 결국 독자니까. 단지, 더 잘 쓸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작품이 아쉬움을 남길 뿐이다.


요새는 출판사도 팔릴 글을 내거나 팔릴 글만 낸다고 한다. 광고도 공격적이라 읽고 나면 광고만 못한 경우가 많다. 원래 광고란 그런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광고가 꼭 그런 건가.. 싶은 것도 어쩔 수 없다. 책에서 마저?


주례사 비평이야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말이고 이제 더는 책 뒤에 글을 비평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그걸 해설이라 붙이는 게 내 생각에도 맞는 것 같다. 비평 같은 비평이 있나, 싶은 시기기도 하고 비평을 할라치면 쌍심지를 켜고 모두 노려보니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글 쓰는 곳도 판이 좁으니 서로 알기도 하거니와 자식 같은 작품에 나쁜 말을 공식적으로 했으니 마냥 좋을 리도 없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작가는 영원히 더 좋아지지 못한다. 그럼 작가는 더 외로운 곳에 서 있을 것 같다.


남의 글을 이렇게 날카롭게 읽으면서 내 글은 얼마나 좋을까... 싶은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좋아지려면 싫은 소리는 당연한 거다. 또 비난과 비평을 구별할 줄도 알아야하고... 그래서 그 많은 합평을 받았던 게 아닐까... 정신 좀 차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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