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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대한 고찰

칭챙총칭챙총

by 명희진






루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보통은 아이들이 없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한 아이가 와서 루이에게 함께 놀자고 했다. 둘이 노는데, 흑인인 아이가 와서 루이 주변을 돌았다. 자세히 보니 비아냥대고 이상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칭챙총, 칭챙총." 하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일렀다. 그런데도 아이의 비아냥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당장 멈춰!"

잠시 분위기를 살피던 아이는 다시, "칭챙총 칭챙총." 노래를 불렀다.

"너희 부모님 어디 계시니?"

나와 거리를 두고 아이는 계속 노래를 부르거나 눈을 찢는 시늉을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거기엔 다른 어른들도 있었는데, 아무도 아이에게 멈추라거나, 그 행동이 잘못됐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다시 전사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도 한 성질 하는지라 나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부모님이 어디 계시는지를 다시 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니 옆에서 방관하던 나이 든 여자가 일어나 무슨 일인지 물었다. 다 봤으면서 마치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물었고 나는 아이의 행동을 처음부터 설명했다.

"혹시 이 아이 부모를 아니?"

그제야 여자는 자기가 아이의 선생이라고 했다. 나는 이 평화로운 동네에서 칭챙총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내 말을 한참 듣던 여자가 비밀을 말하려는 사람처럼 내게 바투 다가섰다.

"이상한 거 못 느꼈니?"

"뭘?"

"아이 말이야."

"...."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잖아."

나는 그녀가 한눈에 알 수 있는 아이의 이상함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섯 살이라는데, 아이는 한 열한 살은 돼 보였다. 지나치게 성장 발육이 좋은 것 말고 내가 뭘 더 알 수 있었을까.

"모자라는 아이야. 우린 저 앞에 장애 학교에서 왔어."

모자란다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 할 말을 잃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할 말을 잃었고 그 아이에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이해를 바란다는 말을 한 후, 여자는 그전까지 우리를 무시하고 앉았던 벤치로 다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곱씹었다. 그건 뭐였을까? 그리고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인종차별적 행위들을 떠올렸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루이와 나는 해변 근처를 걷고 있었다. 루이가 세 살쯤 됐을 때였던 것 같다. 내 네덜란드어 실력은 초초급이었다.

해변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쪽으로 공이 날아왔다. 거의 루이의 앞이었지만 루이가 맞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개중 하나가 "헤이, 차이니즈."라고 나를 불렀다. 딱 봐도 이제 열 살이나 열한 살 정도로 보였는데... 나는 공을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도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누구니?"

"뭐가요?"

"누가 '헤이, 차이니즈'라고 했니?"

아이들은 쭈삣대며 말하길 주저했다. 나는 공을 손에 쥔 채로, 루이에게는 어디 가지 말라고 이르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자기가 그랬다고 했다.

"내가 중국에서 온 거 봤어?"

아이가 고개를 저었고 나는 내친김에 아이를 더 몰아붙였다.

"동양인이면 다 중국인이야?"

"아니요."

"너는 나를 부인이라고 하지 않고 무시하듯 '헤이, 차이니즈'라고 했어. 그것도 내 아이 앞에서."

그러자 한 아이가 이 상황이 심각해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로 그 아이의 엄마가 중국인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금발에 파란 눈의, 누가 봐도 그냥 백인이었다.

"그래?"

"네."

아이들이 합창했다. 이쯤 되니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나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너희 집으로 가자. 가서 너희 엄마가 중국인인지 확인해야겠어."

아이는 엄마가 집에 안 계신다고 했고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낙담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도 그쯤에서 멈추고 싶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이들이 루이를 봤고 나를 봤으니까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거의 울 것처럼, "죄송해요!"라고 외쳤다. 이내 다른 아이들이 내게 사과했다. 나는 아이들의 사과를 받으며, "자, 그럼 이 아줌마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줄게. 나는 한국에서 왔어. 동양인이라고 다 중국인인 건 아니야. 알겠어?"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루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그날 저녁 라파엘은 내 행동이 아주 위험했다고 화를 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 아이가 인종차별을 당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내가 외쳤고 라파엘은 루이가 아니라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내 말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고 나중엔 루이겠지."

그는 소심한 동유럽 사람이라, 아이들이 우리에게 해코지를 할 거라고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왜 그 흑인 아이에게, 또 그 선생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당당하고 전사 장착을 한 내 입을 틀어막았을까? 그냥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내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뭔지 몰라 더 불편했다. 마음껏 혼내고 다그치지 못해서였을까? 기어기 그 부모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걸 못 해서 그랬을까....


퇴근한 라파엘에게 낮의 일을 말했다. 그녀가 내 입을 틀어막은 사실까지도. 거의 AI급인 라파엘이 시원하게 답을 내놨다.

"동정했네."

"뭐?"

"장애라는 말에 쪼그라들었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장애가 있다고 인종차별을 해도 돼? 넌 그 선생의 동정이라는 덫에 제대로 걸린 거야."

나는 귀가 얇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일 당장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에게 칭챙총이 인종차별이라고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게 마치 정의라도 되듯, 대의를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정치가처럼 외치고 싶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다른 입장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화를 내기보다 아이의 이름을 묻고 나와 루이의 이름을 알려주는 걸로 시작해 볼 수도 있었을 거다. 적의의 말에 적으로 답하기보다, 그 적의가 민망하게 다정할 수도 있었다. 지금껏 내가 당한 인종차별은 대부분 중국과 관련된 거였고 사실, 나도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더 그럴까....


또 곰곰 생각해 보니, 루이가 자라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당할 텐데, 그때마다 화를 내고 따져 물으라고 가르칠 수 없었다. 단단한 다정함이 우리에게 필요했다. 아니, 나에게 필요했다.



루이가 필립스 축구를 다닐 때였다.

"엄마, 얘들한테 나 중국애 아니라고 좀 말해줘."

루이가 필드에서 우리를 향해 영어로 소리쳤다. 주위에 부모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네가 말해야지. 여기서 엄마가 어떻게 말해."

내가 한국어로 소리쳤고 이내 루이가 "아니라는데, 자꾸 그렇게 불러!"라고 답했다. 거기 있던 모두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중에는 중국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여기서 루이는 아이들이 자신을 인종차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루이를 인종차별한 건 아니었다. 그냥 동양아이니까 중국애라고 부른 거였을 뿐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나눴다. 루이는 자기가 반은 한국인, 반은 폴란드인이라고 말했는데도 아이들이 자꾸 자기를 중국인이라고 불러서 짜증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인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건 아직 아니라고 했다. 루이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친구들도 다 네덜란드인이고 내 피에도 네덜란드인의 피가 흘러."

루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고 이를 어떻게 바로잡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에 반해 라파엘은 루이가 스스로를 네덜란드인으로 생각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했다. 어차피 네덜란드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으니 자신은 상관없다고 했다. 사실 라파엘의 족보도 복잡하다. 그는 독일인은 아니지만 독일인이었고 슬라브족이면서 폴란드인이다. 또 그의 외가 쪽은 루마니아인의 피가 흐르지는 않지만 전쟁 전까지 그곳에서 정육점을 하며 지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그곳에서의 풍족했던 생활을 돌아가실 때까지 이야기하곤 했다.


"너는 아직 네덜란드인은 아니야. 아빠가 국적을 바꾸면 바로 네덜란드인이 될 수도 있겠지. 아니면 네가 성인이 되면 바꿀 수도 있어. 하지만 너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폴란드인이야. 그게 루이야."

우리의 이런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그러다 다시 아이들이 루이를 중국인이라고 부르면 어떤 기분인지를 물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닌데, 중국인이라고 부르니까. 하지만 내 친구 오스카는 중국인이고 내가 그게 기분 나쁘면 오스카가 슬플 거야."

그러고도 우리의 대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나는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사실을 알려주고 루이의 이름을 알려주라고 했다. 국적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자고. 그래도 그 아이들이 똑같이 행동하면 아쉽지만 그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럼, 이제 유튜브 봐도 돼?"하고 물었다.


얼마 후에 학교에서 루이가 상급생 여자 아이와 친하게 대화하는 걸 봤다. 서로를 안고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자 아이가 내 옆을 친구와 지나갔다. 우연찮게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야?"

"루이. 중국애야."

나는 루이에게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미 백 번도 넘게 알려줬지."

"그런데도 중국애라고 하던데?"

"응, 맞아. 근데 상관없어."

"그래?"

"응."

"내가 기분 나빠하면 오스카가 슬퍼. 그리고 바보를 가르칠 순 없어."

나는 루이의 대응에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토록 오래 분개하고 있었을까. 내 주변에도 많은 중국친구들이 있고 심지어 내 성은 중국에서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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