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점- 연재 5화에 이어서
지금껏 공식적으로 내가 아는 루이의 학교 내 괴롭힘 문제는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지난번 폭력 문제였고 다른 한 번은 그 보다 훨씬 전으로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시기였다.
원래 아이들 그룹(그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함께였다)에 루이가 끼면서 생겼다. 그때 태국과 네덜란드 혼혈인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 엄마도 우리에게 폐쇄적이었고 아이도 그랬다. 그 아이 이름을 M이라고 하자.
M은 자신의 그룹에 늦게 학교에 합류한 루이가 끼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걸 아이들에게 말할 용기는 없었고 그래서 개중에 대장 역할을 하던 A에게 지속적으로 말했다. M과 A는 꽤 가까운 사이로 방과 후 플레이데이트도 자주 했다.
또 내가 이 일을 알기 전 M의 엄마가 내게,
"루이가 자꾸 우리 아이를 아프게 해. 그러면 루이랑 놀지 말라고 할 거야."라고 내게 말했다.
그때 루이와 M도 우리 옆에서 장난치며 걷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함께 운동장에서 놀다가 나뭇가지에 목이 쓸린 게 루이 때문이라고 했다.
루이 목에도 비슷한 상처가 있었고 나는 루이도 항상 나뭇가지에 긁혀오곤 한다고 했다. 루이가 일부러 M을 찔렀는지 물었고 그녀는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루이에게 주의를 주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M은 아이들 사이에 자잘한 다툼도 모두 루이의 잘못으로 돌렸다. M은 얌전하고 내성적인 아이였고 네덜란드어에 아직 서툴던 루이는 항상 잘못 한 아이가 됐다. 그래도 일단 참았다.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이 터졌다.
M의 엄마가 라파엘과 걸으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 거다. 그런데 라파엘은 이를 가만히 듣지 않고 학교에 얘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M이 루이 얼굴을 문 걸 아는지 물었다. 사실 이전에 M이 루이 얼굴을 물었고 우린 이를 그냥 학교에 경고만 하고 넘긴 상태였다. 혹시 몰라 얼굴에 난 이빨 자국을 찍어놓긴 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면서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라파엘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니 선생과 이야기할 거라고 교실로 가자고 했다. 라파엘의 반응에 M의 엄마가 또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고 화가 난 라파엘이 M이 아이들에게 루이와 놀지 말라고 종용한 걸 아느냐고 따져 물었다. 당신 아이가 내 아이를 때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껏 참았다며 그동안 쌓인걸 아이를 픽업 가는 길에 다 쏟아냈다. 라파엘은 교실로 들어가 선생과 함께 M의 엄마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러 간 라파엘이 안 오고 전화도 받지 않아 학교로 갔다.
가는 길에 M과 M의 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라파엘이 자기를 공격했다며 너는 사람이 참 좋은데, 네 남편은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정말 M이 루이를 물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고 나는 사진을 보여줬다.
자신에게 왜 말하지 않았냐고 나를 책망했고 우린 학교에 알렸고 M의 아버지가 알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들 부부는 뭔가 이상했는데, 학교 상담에도 M의 엄마는 늘 함께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M의 아버지 혼자 듣고 삼키는 듯했다.
어쨌든 루이와 놀지 말자는 M의 주장에 결국 A가 수긍하면서 일이 커졌다. 그룹의 아이들이 루이를 따돌리기 시작한 거였다. 한 명의 설득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된 상황이었다. 우리는 담임과 학년 담당 교사에게 이를 알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개선점이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교장에게 다시 알리고 면담 신청을 했다. 그들은 아이들 사이의 단순한 문제로 넘기려고 했다. 미팅 전에 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내에 따돌림에 대한 자료를 다 찾아봤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따돌림의 정도와 그들의 생각에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을지 몰라서였다. 하지만 한국이나 네덜란드나 다를 게 없다. 언제나 기관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축소하기 바쁘다. 교장은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을 잘 살피겠다는 말로 우리를 돌려보내려 했다. 나는 아직은, 이라고 답했다.
나는 이는 명백한 따돌림 문제고 이를 가만히 뒀을 때, 네 명이 다섯이 되고 여섯이 되고 전체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때는 어떻게 막을 건지 같은 걸 물었고 그들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단 한 명의 아이에서 시작된 이 일이 벌써 네 명이라고 교장과 선생을 설득했다. 나쁜 일이 퍼지는 건 생각보다 쉽고 빠르다고.
그러고도 여러 번의 회의가 있었다. 학교는 내게 전교생을 대상으로 따돌림 교육을 시행했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직 어린 루이 학급의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어주며 교육하기로 했다. 4 STIPPEN이라는 게 있는데, 아이들의 손등에 4개의 점을 그리고 그 점을 연결해 연대와 화합을 강조하는 따돌림 방지 운동이다. 나도 자료를 찾으며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 벨기에에서도 하는 운동이었다.
1. Ik vind pesten niet oké en zal er nooit aan meedoen.
(나는 괴롭힘을 허용하지 않겠다 / 괴롭힘에 가담하지 않겠다.)
2. Ik praat erover als pesten mij bang of verdrietig maakt.
(괴롭힘이 나를 두렵게 하거나 슬프게 할 때, 그것에 대해 말하겠다.)
3. Ik sluit niemand uit. Voor mij hoort iedereen erbij.
(아무도 배제하지 않겠다 /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
4. proberen op te komen voor iemand die gepest wordt.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위해 나서겠다 / 괴롭힘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나는 루이에게 학급동료와 친구의 구분을 명확히 알려줬다.
친구라도 나를 자주 아프게 하는 친구는 멀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걸 이해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았다.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다정함이 문제인 것 같았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구별하는데, 평생이 걸리기도 하니까. 일생에 좋은 친구 하나만 얻어도 성공한 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결국은 루이가 상처받고 경험해 깨달아야 할 일들이겠지만, 그래도 부모에겐 부모의 일이 있다.
이 일을 통해 내가 배운 건, 부모는 아이의 입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학교가 그 싸움을 분명히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모, 만만치 않겠어.” 그 생각이 교사의 마음에 스칠수록 좋다. 아마도 한국이 아니라 더 단호하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
공식 기록을 남기고, 체계적으로 싸움을 기록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노력과 수고에 비해 결과가 초라할 수도 있다.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 그렇다. 아이들의 일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내 아이가 가해자의 무리에 있을 수도, 피해자의 무리에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마음이 편하진 않다. 하지만 일단 일을 알게 됐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전사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변호사처럼 기록하고, 조사관처럼 냉정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아이도 아이일 뿐이라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걸 알지만, 내 아이의 피해를 알리다 보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학교에도 학교의 입장이 있고 상대편 부모에게도 그들의 입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어떤 아이에게도 다시 일어나지 않게 어른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 작은 교육과 대화가 결국 누군가의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4 STIPPEN 예방 운동이 있던 날, 루이는 손등 위에 네 개의 점을 내게 보여줬다. 다른 아이들 손에도 모두 같은 점이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쩌면 이런 사소한 연대가 우리 사회를 바꾸는지 모른다. 손등에 찍힌 네 개의 점을 보며 순수한 우리 아이들은, 그 의미도 모르는 다짐을 되뇌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