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글을 쓰는 이들에게
2012년도에 민중문학상에 <가족의 힘>으로 당선 됐을 때, 나는 일본에 있었다.
그때 교토에 꽃놀이를 다녀오느라 070 전화로 걸려온 당선 통보 전화를 받지 못했다. 교토 벚꽃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세 번의 봄을 일본에서 지내며, 세 번의 교토를 보는 사치를 누렸다. 돌아보면 그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어쨌든, 그때 민중문학상을 받고 꽤 오래 나는 정체 돼 있었다. 2017년도에 동아일보 중편 최종심에 올랐지만, 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최종심에 내 이름이 오른 걸 확인했을 때, 임신 사실도 알았다. 나는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야릇한 기분에 빠졌다.
사실, 세 번의 인공 수정에 실패한 후여서 아이에 대한 기대를 살짝 접고 있었다. 네 번째 인공수정을 막 마치고 우린 폴란드 시댁으로 향했다. 이때는 크리스마스 휴가로 의사가 없어서 간호사가 수정된 정자를 내 안에 넣었다. 나는 대강 망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십여분 후에 일어났는데, 주르르 흐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폴란드 시댁에 도착했다. 우리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는 걸 친정 말고는 모르던 때였다. 나는 그냥 망한 거 즐기자는 생각으로 샴페인을 마셨다. 새해에도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으니 임신은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또 실패일 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폴란드까지 차로 오면서 라파엘과 나는 딩크족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겐 귀여운 고양이가 있었고 둘이서 여행을 다니며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살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누며 실패로 인한 충격을 미리 완화하고 있었다.
1월 2일 아침에 동아일보 인터넷 신문을 확인했고 그날 오후에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내 중편이 최종심에 오를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쓸걸이라는 후회가 강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글은 또 쓰면 되고 어차피 계속 쓸 거니까. 이 또한 내 오산이었다.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 없지.
임신 기간 동안은 나름 편했던 것 같은데, 고기 입덧을 해서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소양증이 심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오이를 잘라 온몸에 올리고 있어야 했다. 36주쯤 됐을 때가 정말 최악이었다. 의사는 입원을 권했고 나는 조금 더 참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의사가 빨리 오라고 해서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에 네덜란드 의사가 빨리 입원하라는 거면 심각한 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짐을 싸서 병원으로 갔다. 여자들 출산이야기는 남자들 군대이야기와 같다고, 나는 이 이야기만 꺼내면 멈출 수가 없다.
어쨌든 루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순했고 예뻤다. 그리고 나는 꽤 오랜 회복기를 지내야 했다. 노산이어서였을까. 몸이 자꾸 아팠다.
그렇게 루이가 다섯 살이 됐다. 물론, 나는 항상 타는 목마름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꽤 괜찮은 출판사의 신인상과 신춘문예 같은 곳에 응모를 했다. 아마도 유명해지고 싶었나 보다. 나는 이미 오랜 경험으로 신춘문예나 신인상으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걸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고 글은 계속 쌓였고 나를 알아봐 주는 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점쟁이는 마흔다섯은 넘어야 한댔고-답답해서 점도 많이 봤다- 마흔다섯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고작 몇 년 더 지나는 거였는데....
그런데, 인생이라는 게 정말 이상하지....
라파엘이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 인생이 뭔가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게 이번년도 4월 부활절이었다. 우린 폴란드로 가고 있었고 그는 이직을 고려 중이었다. 나는 그를 조금 비웃었다.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고 그때도 정말 우리 삶은 큰 폭으로 바뀌었었는데. 대게 와이프들이 그렇듯, 또 대게 남편들이 그러하듯이, 우린 자주 서로를 우습게 여겼다. (어쩌면 우리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때 나는 라파엘에게 "Do you feel like easter?" 라고 물었던 것 같다.
근데, 신기하게도 십 년도 전에 써 놓은 장편이 세상에 나오게 됐고 스토리코스모스에서 신인상을 받게 됐다. 묵혀뒀던 글들을 그냥 세상에 풀었다. 서랍에 간직하느니 어디든 나왔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아직 유명해지거나 책이 세상에 짠하고 나온 건 아니지만, 그냥 이 시간에도 글을 쓰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멈추지 말라고, 아직 기회가 오지 않은 것뿐이라고.
적금을 넣듯 글을 쓰고 다듬고 또 쓰고 다듬으라고. 고립돼서 고독하다면, 당신은 어쩌면 제대로 가고 있다고. 그런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