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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시 Aug 21. 2024

모닝페이지

14. 식물을 기른다는 것

기분 좋은, 설레는 아침과 따뜻한 커피 한 잔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숲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화원에 가면 오래 구경하고 싶어지는 그런 감정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요?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베란다가 넓은 것이 좋았습니다. 마침 선물 받은 베란다용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서 거기에 부부만의 예쁜 장소 하나를 만들려고 계획했는데 엉뚱하게도 시어머님의 애착 식물들이 베란다를 가득 채워 테이블과 의자를 놓을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나름 성의껏 소품들을 사들여서 그저 놓아둔 식물들에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작은 정원으로 꾸몄던 시간은 아주 잠깐. 여름이면 바글거리는 모기 때에 질려 식물들을 구박했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모기향을 밤새도록 피워대면서도 아이들의 건강과 연결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아토피 치료하러 사방으로 다녔으니. 지금도 그때일만 생각하면 한심스럽습니다. 내가 모기의 주범을 화분으로 지목한 것은 어머니의 화분 흙들은 모두 산기슭에서 온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느릿느릿 달팽이도 기어 다니고. 어머니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베란다를 온갖 식물들에게 빼앗긴 나는 틈만 나면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시어머니와 전쟁을 불사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드디어 작은 트럭 한가득 식물들이 실려나가고 호기롭게 시어머니도 독립선언을 하셨답니다. 잠시 비워졌던 베란다엔 장항아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화분 때문에 옆으로 비껴 났던 것들이 볕 좋은 중앙으로 진출을 한 것입니다. 베란다는 영원히 인간의 몫이 아닌 채로. 아직도 다 떠나보내지 못한 어머니의 식물들과 함께 새로운 주인이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넘어져 고관절을 다치고 휠체어에 앉아 몇 달을 지내던 그 겨울. 햇볕이 쪼이고 싶어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남향집이라 겨울햇살이 거실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왔지만 더 날것의 햇볕과 마주하고 싶어 지팡이에 의지하며 베란다로 나갔답니다. 날렵할 수 없는 몸에 항아리며 화분이며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이것들을 또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베란다에 겨울에만 피는 철쭉화분 하나가 있었습니다. 신기하게 내가 퇴원을 했을 때부터 꽃이 피더니 이듬해 봄까지 계속 피고 지며 예쁜 모습을 모였습니다. 차츰 그 꽃나무에 애정 같은 것이 스며들었습니다. 겨울에 꽃 피우는 군자란. 또 이름을 잊어버린 작은 꽃. 여름모다 겨울에 꽃을 보여주는 식물들이 더 사랑스럽습니다. 


몸이 자유롭게 되고 나서도 항아리와 화분들은 정열만 다시 했을 뿐 여전히 베란다의 주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도 집으로 컴백하셨습니다. 습관처럼 베란다를 내다보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항아리를 보실 때마다 된장이야기를 꺼내십니다.(치매) 원인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된장을 모두 냉장고로 옮기고 항아리들을 비웠습니다. 비운 항아리는 화분 받침으로 사용합니다. 화분도 종족번성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퇴직 기념으로 꽃다발 보다 화분이 더 많이 들어왔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들어있으니, 살아 있으니 방치할 수도 버릴 수도 없어 베란다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가끔 물도 주고 벌레도 퇴치해 주고 어느 날 보니 베란다 가득 식물들이 차지했습니다. 나도 이제 식집사가 되었나 봅니다. 말라죽을까 봐 물을 주고 얼어 죽을 까봐 거실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고 냉해 들까 봐 덮어주고. 아! 식집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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