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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시 Aug 08. 2024

모닝페이지

5. 여기서 시작한다

흐린 날 커피는 쓰지만 따뜻합니다.


여기서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세상이 다 끝나버린 것 같던 며칠이 지나면 슬금슬금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그러면 또 사부작사부작 손가락들이 움직여 우리는 다시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그것이 부부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기다려 주려고 했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조언은 잠깐 간섭일 수는 있겠으나 살아가는 내내 관여해 줄 것이 아니라면 그만둬야 한다. 혼자 깊이 생각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서 다음엔 좀 더 영악하게 대처해 나가는 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어떻게 열심히 살아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p.d.s 다이어리를 구입했는데 잘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절반도 채워지지 않는 d. 그중 또 많은 부분에 그려지는 TV 시청시간. 그렇다고 그걸 줄이기 위해 나를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TV가 내 삶에 그나마 쉼을 주는 시간이 된다면. 드라마를 되감기, 다시 보기 하는 것을 즐겨한다. 한동안 도깨비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미스터선샤인으로 옮겼다. 지난주엔 연모를 봤다. 슈룹도 보고 싶다가 까닭도 없이 짜증을 유발하는 대비를 생각하면 보고 싶지 않아 다른 것으로 넘긴다. 나의 TV시청은 대부분 드라마 다시 보기다. 내용이 훈훈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래서 수사극이나 내용이 이상한 것을 보지 않는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뜨고 있는 더글로리도 과거 회상씬 그러니까 동은을 폭력 하는 씬은 그냥 넘겨버리고 지금 현재 동은이 그 무뢰베들을 복수하는 장면들만 본다. 본방송이 아니니 내가 보고 싶은 장면들을 선별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좋은데 공영방송으로 방송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폭력성이 그대로 드러나 조금 짜증 난다. 아마도 더 독한 드라마들이 탄생할 거다. 넷플릭스 방영이라는 명목하에. 


어제에 이어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된다. 중단했던 공사를 다시 시작했는지 창밖이 시끄럽다. 흰색에 검은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하늘. 하늘과 산봉우리의 경계가 없다. 봉우리의 절반쯤을 먹어치운 하늘이 계곡을 타고 마을로 내려왔다. 어제 내린 비로 눈을 잃어버린 마을은 깜깜하다. 아침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도 세상은 이렇게 어두울 수 있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늘이 땅에 엄포를 놓는 시간이다.


지난 일주일간은 격리를 잘했다. 몸은 국가에서 격리를 명했고, 마음은 딸의 일로 격리가 되었다. 살면서 겪는 일들이 단 한 가지도 쉽지 않은 것은 매일매일의 일들이 모두 생애 최초로 겪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도 나도 처음 겪는 부모의 일들이기 때문에 서툴고 더 마음 아프고 그런 것 같다. 책을 한 백 권쯤 읽으면 삶의 길이 보일는지. 글을 한 만 번쯤 쓰면 마음의 것들이 다 올라와서 텅 빈 마음이 될는지. 그럼에도 나의 뇌는 그저 쉬자, 그저 놀자 하고 있고 나음 몸은 뇌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고 싶고


도움이란 것은 그가 요청해 올 때 주어야 한다. 다만 내가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표현만 해 주면 그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생각하며 과감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어리석게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그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되는 것은 아기일 때나, 학교에 다닐 때나,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때나, 환갑이 넘었을 때나 부모의 마음에는 항상 있는 것이다. 실제 도움도 안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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