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26
내가 겪어낸 수많은 경험이 더께로 앉아 오늘의 내가 되었을 거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단단해지기도 말랑해지기도 했겠다. 단단해진 것이 마음인지, 뇌인지는 모른다. 다만 육신은 아니다. 운동이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니 육신이 단단해지는 경험은 많지 않다. 산책처럼 걷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위한 것이다. 경험은 나를 환희로 인도해 줄 때가 있다. 그런 경험들은 삶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지렛대가 된다.
내 삶에 큰 변화를 준 경험은 무엇일까? 가장 최근의 경험은 고관절 골절이다. 걷는 것을 싫어했고, 종일 의자에 앉아서 일했고, 거의 움직임이 없이 살았다. 어이없는 사고로 바스러진 고관절 뼈를 연결하는 수술을 했고, 회복하기 위해 걸었다. 걷는 연습을 하기 위해 걸었고, 이제는 생각을 가져오기 위해 걷는다. 산책할 때 글의 소재가 떠오른다. 막혔던 생각이 물꼬를 튼다. 눈 내리는 날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가 미끄러져 개울에 처박혔다. 차는 폐차했고 나의 육신은 멀쩡했다. 4개월쯤 지나 새로운 차를 인수하기 위해 매장에 갔을 때 심장이 덜컥했다. 커다란 차체가 나를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그 차는 남편이 인수했다. SUV 차에서 일반 승용차로 바꾸게 된 계기다. 눈 오는 날엔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걷지도 않는다. 교통사고와 고관절 골절의 사고는 눈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동아리’모임에서 있었던 합평시간은 쓴 경험이다. 그때 나는 시가 뭔지를 몰랐고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이 동아리에 들게 되었다. 월 1회 모이는 모임에 시를 써서 참여해야 늘 고역이었다. 어찌어찌 시라고 써서 들고 가면 회원들은 형편없는 시라고 (사실 형편없긴 했다) 혹독하게 평가했다. 나의 글이 난도질당했다. 앞에서는 웃으며 받아들였는데 다음 모임은 가고 싶지 않았다. 이 경험은 그 후의 다른 토론에서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게 했다. 적어도 타인의 생각과 타인의 글을 난도질하지는 않게 되었다. 대단한 경험들만이 삶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험이 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