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천글자 에세이쓰기 27

by 따시

연극 ‘영웅’을 본 것은 얼마 전이다. 소나기가 내리던 여름 연극 배우 박정자 씨의 강연을 듣고 나서 바로 예약했고 남편과 함께 광화문까지 나들이했다. 청년 시절 소극장에서 본 연극이 마지막이었고 그때의 주연이 박정자 씨였다. 내게 ‘영웅’이라는 단어는 연극무대 위의 인물과 같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영웅이라는 단어가 문턱을 많이 낮추었다. 예전에 내가 학습생일 때는 저 멀리 있어서 우러러봐야 하는 대상이 영웅이었다. 이순신이나 안중근처럼. 지금의 영웅은 그곳에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다. 작은 영웅들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혹은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회는 많은 작은 영웅들이 있어 굴러가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 아침 따뜻한 잠자리의 유혹을 물리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두는 지금 이 사회의 작은 영웅들이다. 사회적인 불의를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라도 보태고자 광장으로 나서는 사람들도 작은 영웅들이다.

나는 언제 영웅이었나? 질문에 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실히 수행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굴곡진 삶의 흔적은 감춰졌고 아직 남은 삶은 가늠할 수 없다.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누구에게 의탁해서 살았던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늘 마음을 다짐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낸다. 어렵고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며 살지 않았다. 어떤 시기에는 꾸역꾸역 삶을 살았다.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 결국 모든 삶은 지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영웅이라는 단어는 조금 거창한 무엇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나는 늘 영웅이었다. 평범하게 나의 삶을 살아낸 것이 영웅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웅이란 타인에 의해 불리는 단어겠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넌 영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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