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28
“저녁을 왜 안줘요?” 저녁 식사하고 약먹고 이제 차분하게 잠들면 되는 시간, 침대에 누웠던 노인이 다시 일어나서 저녁을 달라한다. “아까 드셨어요.” “내가 은제 저녁을 먹었어요. 저녁을 먹었는데 내 배가 이렇게 홀쭉해요? 참내 증말 억울하네. 얼른 밥 줘요. 찬밥이라도 없어요? 나원 누구한테 말할데도 없고” 노인은 새삼 억울하다는 표정과 몸짓을 하고는 밥을 내놓으라 한다. 밥을 또 드릴 수는 없고 빵 몇 조각 접시에 놓아드린다. 이거라도 먹어야겠다며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일어난다. 어제는 “내 옷을 그이가 다 가져갔어요. 옷 좀 찾으러 가야겠는데” “세탁해서 서랍장 속에 넣어놓았어요” “내 옷을? 왜 한 번밖에 안 입은 걸 빨아요. 장 속을 아무리 뒤져도 없던데.” 노인은 치매 2등급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매월 급여 날이면 현금을 찾아 노인에게 용돈을 드렸다. 십일조처럼 꼬박꼬박. 그달에도 어김없이 용돈을 드렸는데 며칠 뒤 노인이 말한다. “너 이번 달 나 용돈 안 줬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엊그제 봉투에 넣어 드렸잖아요” “글쎄 이달에는 안 줬어. 그럼 내가 받은 돈을 어디에 썼다는 거냐. 참 내 내가 안 받았으니 없다고 하는 거지” 그때 노인의 얼굴이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큰소리로 억울함을 토로하던 표정과 닮았었다. 치매의 시작은 그렇게 의심하는 것부터다. 노인은 지갑을 침대 매트 밑에 넣어놓는다. 며칠에 한 번씩 매트를 정리하다 보면 별별 것이 다 나온다. 옷, 덧버선, 머리띠, 행주, 기저귀 등 장 위에 놓아둔 요와 이불을 침대 위에 모두 내려놓아서 왜 그러냐고 여쭈었더니 “누가 내 이불을 죄다 훔쳐 가.” 세탁을 하려고 가져간 것을 누가 훔쳐 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을 콕 집어서 도둑으로 몰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는지. 아니면 조금 더 진행되면 “저년이 다 훔쳐 갔다”라는 웃픈 일상이 도래할는지. 치매 환자가 기억인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누군가를 의심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