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천글자 에세이쓰기30

by 따시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을 때 입에 착 감기는 단어가 ‘항꾸네’였다.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라 사전을 찾았더니 ‘함께’의 방언이다. ‘항꾸네’를 자연스럽게 넣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직 쓰지 못했다. ‘함께’, ‘항꾸네’ 말에서 정이 묻어나온다. 외롭지 않은 언어. 쓸쓸하지 않은 단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죽으면서 혼자서 큰일을 치러야 할 딸에게 항꾸네할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다. 함께한다는 것은 때로 따뜻한 것이다. 늘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아들은 엄마를 모시고 왔다. 요양원에 간 지 1년 만에. 평생 함께하기로 엄마와 약속했다는 거다. 엄마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흩트려놓지 않고 함께 모아 키웠는데, 고작 엄마 하나를 집에서 못 모시고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양심에 찔린다는 거다. 그렇게 시작된 치매 엄마와의 동거. 엄마는“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모래는 내 집에 가야겠어”라고도 한다. 아들을 앞에 놓고 묻는다. “우리 아들은 여기에 통 안오지요?” 함께 있으나 함께 없는 가족이다. 엊그제 저녁에는 “여기 살아요?”라고 묻는다. “네. 여기가 우리집이에요. 여기 살아요” “그럼 엄마는 있수?” 아들은 웃는다. 함께 있으면서 없는 엄마를 향해. 아들이 잠옷을 입으면 “여기서 자고 가요?” “네 엄마 옆에서 잘 거예요”라고 대답하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아이 좋아라.”라고 하신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신과 혼이 결합되어 있는 존재다. 아직 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마음이라고도 하고 기억이라고도 하자. 엄마의 기억 속에 아들이 없다. 그저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 낮에 다녀가는 요양보호사가 퇴근 인사를 하면 “언제 또 와요?” “낼 꼭 와요” 한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며 사람을 찾아다닌다.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사람은 혼자일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일 때 생명이 시작되고, 누군가의 돌봄이 있어야 무덤에도 편히 들어갈 수 있다. 함께는 정(情)이다.

keyword
이전 27화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