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 쓰기 1.
모든 달력이 1월부터 시작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지만 세상에는 약속이라는 것이 존재하니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내 생의 달력은 1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산골 마당에 쌓인 눈이 문지방까지 닿았다고 했다. 세밑 밤늦도록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는 안방으로 돌아와서 갑자기 산기를 느꼈고 소리 없이 나를 낳으셨다는 거다. 오죽하면 사랑의 손님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나는 12월 눈이 펑펑 쏟아지던 새벽 세상과 조우했다.
“우리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두 먹으러 갈까요?” 말소리는 느끼하고 목소리는 섹시한 남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까짓것 그럽시다.”라고 맞받아 건넨 한마디가 첫 데이트였다. 지금 그 남자와 한집에 살고 있다. 오래된 침대처럼 가끔 삐그덕거리지만,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혼자와 혼자가 만나 다섯 식구가 되었다. 어쩌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대한 반항 없이 학교를 갔고, 공부를 했다. 졸업하고 취업했다. 삼 일만, 삼 주만, 삼 년만 참으라던 어른들의 말씀대로 참았다. 간혹 억울했고, 재래식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팽팽 코를 풀며 울기도 했다. 유독 나만 갈구던 팀장에게 언젠가는 기필코 복수하리라고 이를 갈았지만, 그는 떠났고 대신 팀장이 되었다. 세월은 한 사람에게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강가에서 자라는 뽕나무처럼 나도 무럭무럭 세월을 먹었다. 아직 푸릇푸릇한데 세상은 나를 떠밀었다. 은퇴하라고. 팀장은 새로운 팀장을 낳는 것이라고. 12월을 끝으로 더 이상 회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내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은퇴는 내게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부추겼다. 미루었던 시 공부를 시작했다. 천 편의 시를 필사하면서 수년간의 습작기를 지났다. 문학 계간지에 투고했고 어느 날 드디어 “시 부문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폭설이 내린 12월이었다. 12월은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시작이기도 하다. 12월은 내 삶의 첫째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