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24
트리 대신 장식할 앵두 전구를 구매했다. 창가에 걸어두면 그런대로 크리스마스 느낌이 날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즐거워진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은 오래되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다. 가끔 그립기도 한 풍경이다. 24일 저녁부터 분주했다. 아니다. 한 달 전부터 분주했다. 연극연습에 노래 연습에 갖가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24일 저녁이면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진행했다. 딱 한 번 사회를 맡았던 기억도 있다. 너무 점잖은 진행으로 사회자로서는 낙제였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한 다음 밤참으로 떡국 한 그릇씩을 먹는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 대여섯 명씩 한 조가 되어 새벽 송을 돌았다. 팀장은 전등을 들고 커다란 자루를 메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가를 불렀다. 세상이 잠든 고요한 새벽. 불 켜진 집 대문 밖에서 찬송을 부르면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나와서 맞아주었다. 물론 예정된 성도의 집이다. 어느날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서 뽀드득 눈을 밟으며 갔고, 어느 해는 너무 추워서 찬송을 부르는 입도 얼어붙었던 생각이 난다. 따뜻한 차를 내어주기도 한다, 한 보따리 자루 속에 넣어 주는 과자는 모두 모아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오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준다. 브라스밴드를 시작했던 첫 해 밴드 단원들 집으로 가는 새벽 송을 계획했다. 교회에서 먼 거리에 있던 우리집은 맨 마지막에 왔다. 추위 속에서 악기를 부느라 수고한 단원들을 집안으로 들이고 먹거리를 준비했다. 이것이 내 생의 마지막 새벽 송이었다. 지나간 추억이 모두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뽀드득거리며 언 땅을 밟았던, 춥고 졸리던 그런 새벽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 올해 교회에서는 이브 행사를 하지 않는다. 교회의 여건이 그렇게 되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브 행사에 참여해 본 기억이 흐릿하다. 대부분 어린아이나 학생, 청년들이 준비하는 행사인데. 아이들은 숫자가 줄었고 학생들은 공부가 우선이고 청년들은 세상으로 갔다. 남아 있는 것은 노인들뿐이다. 구경꾼은 있는데 광대가 없는 격이다. 오늘날 성탄절도 그렇다. 주인공은 예수인데 예수는 없고 크리스마스를 구경하는 구경꾼들만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