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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시 Aug 10. 2024

모닝페이지

7. 커피 한 잔과 햇살 한 스푼

씻는 일과 청소하는 일과 정리하는 일. 이런 모든 것들이 하기 싫어졌다. 잠자는 일까지도. 저녁을 먹은 채 설거지조차 하지 않고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눈이 감기고 뇌가 반 수면 상태가 될 때까지 TV시청을 했다. 새벽까지. 작가의 글 쓰는 작업을 위한 시간도 아니고, 오로지 TV드라마 정주행을 위해 새벽까지 잠들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 아니 어색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다. 조금만 더 나태해져 볼까 하는 생각과 이제 그쯤이면 됐다 일어나 움직여라 하는 생각이 충돌하기도 한다. 오늘 조금 게을러도 괜찮을 일과 절대로 미뤄서는 안 될 일들도 있는 것인데. 


명절이 돌아오면 한 달쯤 전부터 분주했다. 우선 마음이 분주했고 주말에만 주어진 시간에 청소를 하고, 집 정리를 하고, 장을 보고. 그렇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시간 사이에서 나는 더 무너지고 녹슬어졌다. 세월이 30년쯤 흘렀어도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과일을 깎아야 하는 처음의 광경은 생경했다. 나는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배가 너무 불러서 도저히 어이상은 못 먹는다고 밥상을 물린 사람들이 설거지를 끝내지도 않았는데 과일상을 요구하는 것은 늘 나와 대치되었다. 함께하지 않는 손놀림들도 싫었다. 먹기 위해 음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골고루 나누어주기 위해 먹는 것의 다섯 곱절은 더 장만했던 음식의 양에 치를 떨었다. 


결혼 후 첫 명절. 스텐 들통의 1/3쯤 되는 녹두를 갈아오셨다. 시어머니는 녹두 빈대떡을 반드시 해야 하는 명절 음식 1순위에 넣으신다. 거실에 빈대떡을 부칠 준비를 하고 늦은 오후에 시작했다. 처음에 양을 보니 금방 끝날 듯했다. 그런데 녹두 빈대떡은 녹두의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부재료들이 들어가는 거였다. 처음 1/3의 양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 줄지 않았다. 나중엔 남편도 함께 거들었다. 새벽까지 꼬박 뒤집고 나서야 대형 바구니 가득 녹두빈대떡 잔치가 끝났다. 다음날부터 허망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 많은 녹두 빈대떡이 냉장고에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다 가출해 버렸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나눔을 좋아하셨다. 문제는 나눔의 음식을 당신 손으로 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중에 내가 명절음식을 맡아서 할 때도 어머니의 녹두 빈대떡 사랑은 계속되었다. 녹두 한 봉지를 갈아 만들어보니 열두어 개쯤 나왔다. 그 정도도 우리가 먹기엔 남는 양이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음식 나눔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생신날 모여 앉았던 형제들에게 전하나, 과일 하나씩 다섯 쇼핑백을 똑같이 만들어 두었다가 돌아가는 현관에서 배웅하던 일을 멈춰버렸다. 시어머니의 노여움은 며칠을 걸쳐서 대단했다. 그러나 절대로 안될 것 같던 많은 일들이 세월이 지나니 다해결이 되어 이제는 오히려 음식을 싸가지고 온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도 부담스럽다. 각 집에 입맛이란 것이 있으니. 이미 나의 냉동실은 홈쇼핑산 음식들로 그득한데 당신의 입맛에 맞춘 음식까지 나의 냉장고에 채워 넣고 싶지는 않다.


남편과 둘이 남게 된 생활이 조금 낯설고 부담이었는데 이제 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TV채널권을 가지고 다투는 부부도 있고, 아직도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본다고 큰소리로 뭐라 하는 남편들이 있다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쪽에 선 언제나 양보를 하고 내 손에 리모컨을 쥐어주는 남편이라 딱히 큰소리 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오늘도 혼자 2시간 운동을 했다고 하는 신혼 3개월 된 딸내미의 삶이 자꾸 마음을 붙잡는다. 어서 햇살이 따뜻하게 번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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