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2년씩 상상하기

D-24

by 윤선



Belorado ~ San Juan de ortega (24.3km)
06:30 ~ 12:00 (5시간 30분)




다시 오늘도 길을 떠났다.

간만에 오늘은 길가에 나무가 종종 서 있었다.




나무가 주는 그늘,

그 잠깐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40년 후에 다시 까미노를 오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때는 이 곳의 나무가 베어져 밀밭이 되어버리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오늘도 나의 길 메이트는 시모네이다.

시모네는 오늘도 내게 말을 걸었다.




“써니, 너는 무슨 생각하면서 걸어?”

“글쎄. 아무 생각도 안할 때도 있고, 앞으로 한국에 가면 무엇을 하면서 살까 생각할 때도 있고. 너는?“

“나는 걸으면서 하루에 2년씩 상상을 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이야.“




그 말을 듣는데 꽤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미래를 하루에 2년씩 상상해보는거다.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약 25일 정도 남았으니까,

최소 50년 이후의 나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다.




걸으면서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온전히 상상하겠다고 다짐했다.




‘2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갑자기 그 모습을 상상했는데, 나는 복학을 했고 답사 발표 제비뽑기에 걸려 발표를 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윽 안돼!’







시모네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너는 내가 만난 첫 동양인 여자야. 눈동자가 검은색인 것이 아주 매력적이야.”

그 말을 듣는데 나를 꼬시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탈리안의 말도 한국인처럼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너는 첫 번째라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내가 또 다른 동양인을 만나고 난 뒤에 너에게 말할께“




뭐지?

나는 시모네에게 좋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왠지 모르게 차인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시모네 인생에서 처음 만난 검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라니.

그 점만 기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PS. 까미노를 걷고 5년 뒤 나에게 청첩장이 도착했다.

시모네가 까미노에서 두번 째로 만난 한국인 언니와 사귀었는데,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참으로 신비로운 까미노 인연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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