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D-10

by 윤선


Ponferrada ~ villafranca del Bier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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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위에는 저마다 아픔을 덜어내고자 오는 사람들도 있다.




까미노 길에서 만난 우리 오빠도 (이름이 우리이다) 그 중에 한명이었다.

우리 오빠와 만나 꽤 오랜 시간을 함께 걸었다.




오빠의 표정은 좀처럼 변화가 없다.

기쁘고 행복할 때는 입가의 옅은 미소가 살짝 번지는 것이 전부였다.

소리내어 웃거나 입을 크게 벌리며 웃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런데 눈은 늘 슬퍼보였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자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우리에게라도 털어놓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지 나는 알 수 없으니까.







언젠가 나는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대하는 것이 참 어려웠던 사춘기의 소녀는 학교 가는 것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다행인지 반 아이들이 나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그냥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지금 기억나는 중학교 친구의 전부였다.




수능을 망쳐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

재수를 선택하는 대신에 차선을 선택했다.

지리교사가 내 꿈이었으니까.

지리교사만 될 수 있다면 지방에 있는 대학이든 어디든 괜찮다고 말이다.




다만 부모님께 죄송했다.

인서울 대학에 갔더라면 기숙사비와 자취비는 들지 않았을테니까.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갔지만,

내 머릿속에는 편입이라는 두글자가 맴돌았다.




대학 생활을 하며 새로운 것을 많이 도전하며 지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도전이 학벌 컴플렉스라는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떠올릴수록,

그걸 가진 사람들과 만날수록,

나는 작아졌고 불행해졌다.






물집이 자랐다가 터졌다가 반복하며 굳은 살이 박힌 발을 보며 생각이 났다.

나는 왜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나의 행복을 찾았을까.




이 길은 고통이 아니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로 가득했다.

파란 하늘, 7월의 작렬하는 태양, 그리고 간혹 그늘을 선물해주는 구름, 시원한 바람.

심지어 내 발의 굳은살까지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걸으며 나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행복임을 직접 걸은 후에야 깨닫는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약 일주일 남았다.

나는 오늘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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