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교감하는 소중한 시간
아빠와 아이가 숙제하는 시간은 아이와 교감하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의무감에 해야 하니까 하는 귀찮고 빨리 처리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 아닙니다.
하루 중 엄마아빠와 아이가 유일하게 같이 보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름만 초등학교 고학년이지, 첫째아이는 애입니다. 정신연령도 어리고 소심하고 약간 아빠 의존적이고 순수합니다. 딱 어릴때의 아빠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빠도 어릴때 좋게 말해 '순수'지, 정신연령이 낮고 어리숙하고 엄마옆에서 안 떨어지려는 기질이 있는 꽤 수동적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를 닮은 아들이 국어숙제, 사회숙제, 음악숙제를 같이 봐 달라고 합니다. 혼자선 못 하겠다 합니다.
아이가 국어숙제로 글쓰기를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글을 풀어가야 할지 몰라 아빠한테 도움을 청합니다. 국사숙제는 요약정리. 고려시대를 한 장에 요약을 해야 합니다. 어찌할 줄을 몰라 한시간을 붙잡고 있다가 아빠에게 sos를 칩니다. 음악숙제. 아빠 생각엔 매우 간단해 보이는데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건데, 수어번이나 읊으며 종이에 써 내려간 게 딱 1줄, 1줄 쓰는 데 벌써 한시간이 넘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아빠에게 sos를 칩니다.
아이가 아빠를 부르면, 아빠는 옆에 바짝 붙어 이런 해법, 저런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빠만의 답안을 얘기해 줍니다. 그러면서 아빠는 다른 주변 지식도 덤으로 같이 얘기해 줍니다. 아빠가 긴 역사책 내용을 요약해서 불러주기도 합니다. 음악숙제는 아이의 생각을 듣고 아빠의 의견을 얘기해 주기도 합니다. 때론, 말이 '아빠와 아이가 하는 숙제 봐 주기'지, 실은 거의 아빠가 해 주는 숙제일 때도 많습니다. 약간 과장하면 아빠는 부르고 아이는 받아쓰고. 비록 그렇더라도 아빠는 상관없어 합니다.
엄마는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지 그러면 못 쓴다, 아이 수동적/의존적으로 키우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애 버릇 잘못 든다"고 한 소리를 합니다. 한땐 아빠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이숙제 봐 주기'가 '아빠가 하는 숙제'로 바뀌면, '이러다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 부모욕심이 발동하여 속으로 화가 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고쳐먹기로 한 다음부턴, '아빠의 숙제 봐주기'는 비록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만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빠 어릴때 일입니다. 내일까지 내야하는 그림숙제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수채화숙제인데 실은 태어나서 수채화를 그려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몰랐습니다. 물을 떠 놓고 물감을 짜놓고 도화지를 펼쳐놓고... 끝. 멍하니 생각만 하다 밤이 되었습니다. 잘 시간인데 해 놓은 건 없고.. 울고 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고 와서 어떠한 꾸중이나 잔소리도 없이 그림을 대신 그려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대신 그려준 그림이 너무너무 고맙기도 하면서 또 굉장히 부끄럽기도 했지만 숙제를 무사히 내서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쓸어내렸었습니다.
그 이후 더 크면서 아빠는 그림을 제법 잘 그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학교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도 타 오고 제 그림이 이웃 일본에 보내지기도 하는. 아버지가 대신 그림을 그려준 그 아이는 시간이 지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아무것도 못 하는 그런 아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지원을 힘받아 오히려 잘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어른이 돼서도 직장에서 일이 힘들고 혼자라는 슬픈 생각이 들때면 이상하게 어릴적 아버지가 그림을 그려주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곤 했습니다. 약간 희미한 기억속에서 아버지가 야밤에 물감으로 도화지에 수채화를 열심히 그려주던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문뜩문득 떠오르고 했습니다.
아빠는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아이와 '숙제 봐 주기'를 하다보면, 내 아이가 왜 이런 쉬운 것도 이해를 못할까? 이 정도는 아이 머리에서 척척 나와야 하지 않나? 나는 저 나이때 이런 정도는 알았는데... 이런 생각에 휘말려 내 아이를 올바른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착각과 잘못된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욱하는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내기도 했고 언성이 높아져 귀한 저녁시간이 싸~하게 변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생각에만 그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어릴때 대신 그려준 그림을 떠올리고 아차 하고 정신이 번쩍~드는 경험을 하고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아이가 물으면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아이가 모르겠다 하면 설명해 주고, 아이가 전혀 모르겠다 하면 화 내고 신경전 할 시간에 대신 불러주고, 비록 대신 해 주지만 그렇게 하게 된 이유와 주변지식, 역사를 풍부하게 설명해 주고, 잘 쓰고도 자신을 못 믿겟는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면 아~주 너~무 잘했다고 폭풍칭찬을 해 주고... 아빠는 이 시간이, 아이와 교감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달은 지가 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늦게 사회에 나와 늦게 결혼해서 늦게 이쁜 아이 낳고 늦게 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끝내고 놉니다. 얼굴에 편안하고 만족스런 웃음이.. 멀리서도 느껴집니다. 부족해도 잘했다 잘했다 하는 칭찬에 오늘저녁 아이는 평온한 마음이 충만해 합니다.
2022-가을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