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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퇴근하는 아빠

유연근무하는 아빠

by 초록빛


아빠는 일찍 퇴근합니다.

아빠는 유연근무 중.


1. 유연근무를 맘 먹다.


왜 유연근무를 신청했을까. 왜 아빠는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씻기고 책읽어주고 학교숙제를 봐주고 밥먹이고 빨래하고..아이는 아빠 회사가 그냥 좋은 곳이라서 일찍 퇴근하는 줄 압니다.


솔직히 재정적인 여유가 있다면, 아이를 봐 줄 돌봄이 아주머니를 쓰고 싶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아이를 집에 두지 않고 학원으로 돌릴 겁니다. 또, 여유가 있다면 굳이 맞벌이를 안 해도 되겠네요. 참.


아이엄마는 소위 우리사회가 말하는 그 경력단절녀 였습니다. 아이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 둔... 그런데 다시 취직을 하려니 뽑아주는 데가 없습니다. 나도 나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는데 이렇게 아이 낳아 키우다 보니 직장이 잘 구해지지 않는다며 낙담에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또 취직한다 해도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는데 어떻하냐며 걱정이었습니다. 남편으로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 유연근무를 신청했습니다. 지금은 제법 많은 동료들이 유연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눈치를 많이 봤었습니다.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나? 누가 먼저 그거 신청하나? 하고.


7시부터 4시까지. 유연근무를 합니다. 아침잠이 많은 내겐 쥐약이었습니다. 일찍 퇴근하는 내게 핸드폰은 저녁 6시까지 쉴 틈이 없이 울려댔습니다. 저를 제외한 남들의 직장 시계는 9-6시까지 였으니 말입니다. 4시 퇴근, 4시30분 아이픽업, 5시~6시 간식먹이며 책읽어주고 숙제봐주기. 그 틈틈히 흰빨래, 검은빨래 하기. 6~7시 숙제가 길어지면 계속 숙제봐주기. 이것 하다 저것 하다 보면 벌써 깜깜한 밤이 됩니다. 그동안 말만 아빠였지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초보 남편이었나 봅니다.


먼저, 아빠는 아이 둘 책을 읽힙니다. 첫아이째는 스스로 읽게 하고, 둘째는 직접 큰 소리로 읽어줍니다. 그나마 첫째아이 어릴적 치면, 둘째는 적게 읽어주는 편에 속합니다. 책을 몇 권 읽어주고 나면, 목 아픈 건 둘째고 우선 피곤함과 눈꺼플이 내려옵니다. 이상하게 책 읽어주다보면 내가 졸고 있을 때가 잦습니다. 졸음 참는 참을 인자를 씁니다. 허벅지를 찔러댑니다. 그런 연후 아이 숙제를 봐 줍니다. 수학익힘, 국어받아쓰기, 그림일기, 국어모듬숙제, 사회요약노트, 영어숙제... 머가 많습니다.


학급 다른 친구들은 다 학원을 다닙니다. 아파트 보습학원엔 애들이 북적북적합니다. 과목당 학원비가 만만찬습니다. 1명만 해도 좋은 학원 다니면 월 100만원은 금방입니다. 2명이면 200? 아, 그거 빼면 내 월급이...


그래서 시작한 게.. '아빠가 직접 아이를 가르쳐 보자!' 였습니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아이를 가르치는 것 쯤은 쉬워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독 습관을 길러주고 직접 아이를 가르치면 과외학원에 안 보내도 될거라는 참 단순한 생각에서 였습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학원에 안 보내려면 집에서 책 읽히고 직접 가르치는 수 밖에 없다 싶었습니다. 아이엄마는 제가 콧대높고 자신만만해서 아이 공부를 가르치는 줄 압니다. 또 제가 못 다이룬 꿈 애한테 한풀이하는거라 합니다. 아빠 자기만족을 위해서 가르치는 거라 합니다. 아닌데..


근데, 이젠 매일매일이 즐겁습니다.전엔 애들 빨리 씻겨놓고 살~짝 자고 싶기도 하고, 아이가 책 읽어달라고 하면 피곤함과 짜증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이 아빠도 바뀌었습니다. 이 유연근무하는 육아 생활이 아빠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시간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평생 이 맘때 아니면 다시는 안 올 이 소중한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낸다는 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으로 변했습니다.


2. 아이 싸움 말리기, 아이 보기 참 힘듭니다.


아이는 커서도 계속 싸운다 합니다. 8살. 12살. 이 나이도 이케 싸우는데, 크면 얼마나 리얼하게 싸울지 궁금하네요. 아이가 둘이면 서로 위해 주려니 싶었는데, 다 부모생각. 부모욕심이었나 봅니다. 아이육아 중 힘든게 아이 싸움 말리는거 입니다. 베스트 10중에 상위권일 겁니다.


아이싸움이라고 어른이 쉽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걸 키우며 깨달았습니다. 윽박지르거나 혼낸다고 해결되지않는다는 거도. 애들싸움에 잘못 말려들면 희한한 일이 생깁니다. 나중에 보면 이상하게 싸움의 주범이 다름아닌 아빠가 되어 있습니다. 시작은 아이 둘이 했는데, 말리다 정신 차리고보면, 아빠가 잘못해서 이 사단이 난 걸로 둔갑돼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싸움말리다 욱하는 마음에 혼을 내면 집안은 울음바다로 변합니다. 이도 아빠의 잘못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 또 돌아앉아 화낸 자신을 탓하며 후회와 반성의 저녁을 보냅니다.


아이 싸움이 엄마아빠 싸움으로 번질 때가 많습니다. 과거 우리 클 시절에는 부모님이 혼내면 다 됐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아이가 싸우지말고 얌전히만 큰다고 생각해 보자구요. 그게 더 이상한거 아닐까요. 어른도 직장서, 집에서 싸우는데, 아이가 되려 싸우고 해야 정상 아닌가 싶기도합 니다.


그런 생각 이후 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경험과 역지사지의 마음이 저를 성장케 한 셈입니다. 사람의 다양성. 인간 두뇌의 다양함을 인정하니 세상의 무상이 보이기 시작햇습니다. 무상.. 동일한 건 없고 모든 게 다르고 변한다는 것. 그래~ 싸우는 너도맞고 너도 맞고.. 다 들어보면 맞다 싶습니다.


뒤늦은 나이에 애 보느라 고생이지만, 아이를 보다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다양성도 터득합니다. 인내하는 법도 배웁니다. 싸움 말리는 노하우..아.. 이건 아직. 싸움에 안 휘말리고 이성을 빨리 찾는 법도 배웁니다. 수학 모른것 가르치다 속터져 소리지르기 직전까지 갔다 이성을 찾는 노하우도 터득합니다. 어느덧 조용조용 차분히 가르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모르른 건 죄가 아니다. 모르는 건 니 잘못이 아니다... 안심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모르면 달리 가르쳐보자..하고. 다른 관점에서 가르쳐보면 희한하게 따라오는 아이를 보며 그래 이거다~ 책상을 내리치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요즘 몸은 힘들어도, 퇴근후 직장전화가 계속 와도, 한손엔 아이 손 잡고 하원하며 한손엔 전화기를 붙들고 예 예~하는 불쌍한 나를 발견해도.. 그래도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기,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이 유연근무하는 아빠는 참~ 행복합니다.


2021-10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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