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습작(詩)]
그 남자는 시인이예요.
사실 정식 시인은 아니예요.
주변에서 그를 그렇게 불러요.
그는 평생 시를 읊었어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어요.
평생 시를 노래삼아 노래를 시삼아 음악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퇴직을 했어요.
학교에 더 남아 달라는 제안도 거절했어요.
이 노인네가 젊은교수들 앞길 막는다며.
정년퇴임하고 한때 남들이 쎄게 온다는 슬럼프도 겪었어요.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그는 책상에 앉아 흰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잘은 모릅니다. 그가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그는 시만을 써요. 희한하게도.
산책하고 와서 시 한편.
당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 한편.
아침에 직접 내린 커피 한 잔 마시며 시 한편.
같이 늙어가는 아내와 다투고서 시 한편.
아내가 된장찌개 끓이는 모습을 보며 시 한 편.
손자손녀에게 남길 말이 생각났다며 시 한편.
그렇게 쉼없이,
인생의 후반기 생각들을,
목말랐던 감정들을,
시로 써 내려 갔어요.
그렇게 쓴 시가 책상 한켠 가득 높이높이 쌓여갔어요.
나는 그의 시를
나만의 공간 어딘가에 옮겨적어 기억하고 싶었어요.
그 시들을 읽으며 그가 없을 나중에도 시를 읽으며 그를 생각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할아버지의 시를 읽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의 시詩를 옮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직장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그간 게을렀어요.
그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 뿐예요.
다시금 정신을 차려요.
그의 시를 옮겨요.
한편 한편.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썼는지 마음에 와 닿아요.
눈에 선명하게 그려져요.
마음이 이상해요.
나 자신의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고통이 밀려와요.
단지 옮겨적기만 하는데, 고통이 차올라요.
이게 감정이입일까.
그가 산책을 하며 한 생각들.
같이 늙어버린 아내를 바라보며 한 생각들,
처마밑 까치집, 찔레꽃, 휜철쭉꽃을 보며 한 생각들.
숲속 낙엽을 밟으며 한 생각들.
정년퇴임을 겪으며 한 생각들.
모든 게 내 가슴에 다가와요.
고통이 눈 쌓이듯 소복소복 쌓여요.
그 고통이 쉬이 녹지를 않아요.
다음주에 부모님댁에 들러
방 한 켠에 쌓여있을 아버지 습작들을 또 가지고 와야 겠어요.
2022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