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 비친 이 세상,
모두 외래어 투성이입니다.
스프링클러송수구 (sprinkler送水口)
모두 외래어 입니다.
모두 영어와 한자 입니다.
우리말이 아닌 외래어로 뒤덮힌 세상을,
삐딱한 눈으로 비판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이,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져서 입니다.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어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겝니다.
'화재시 물뿌리는 기구에 필요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고 길게 풀어쓰자니,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축약해서 표기할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아차. '화재시, 기구, 공간, 부족, 축약, 표기, 이유..' 모두 한자입니다.
아이가 뉴스를 보다 묻습니다.
"아빠, 금리가 뭐야?"
"돈에 붙은 이자, 한자야"
"이자가 뭐야?"
"비슷한 뜻, 돈을 빌려줬을때 돈에 붙는 이율, 비율, 이것도 한자야"
"비율이 뭐야?"
와~, 어렵습니다.
우리말이 다 한자 어휘로 돼 있습니다.
대화중에, 글중에, 순수우리말은 어느정도 일까.
조사를 빼면 다 한자 같은데 말입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생활에 스며들어 버린 한자 어휘들.
익숙해져 버린 것 뿐이지,
실은 어른들도 설명하려면 머뭇거리게 되는 단어들.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들은 궁금할 겁니다.
아이들은 참 이상할 겁니다.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쉽고 과학적이라는데,
세종대왕께 감사해 해야 한다는데,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왜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 될까.
이상하다~ 내 머리가 나쁜 걸까.
왜 읽자마자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
먼저 한번 읽고,
그 다음으로 또 한번 각 단어를 다시금 재해석해서 읽어야 하다니.
왜 그래야 할까.
읽는 동시에 자연 이해가 돼야 가장 뛰어난 말과 글 아닌가.
아이들은 이런 생각이 들 겝니다.
길을 가다
수많은 간판과 포스터, 전단지, 표지판을 읽어 봅니다.
아이와 서서,
아이의 눈이 되어,
처음 배우는 초심자처럼,
그 수많은 글들을 읽어 봅니다.
음.. 저건 한자를 우리말로 옮겨적은 거,
음.. 저건 영어를 우리말로 옮겨적은 거,
어.. 저건 왠지 프랑스어에서 온 건 같은데...
뉴스에서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로 출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밑에 자막이 난해한 법률용어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저 단어는 한자로 된 법률용어 같은데..
일본식 한자어휘 같은데...
아이의 눈으로 보니, 저 자막들은 외국말 같습니다.
우리 한글로 돼 있다 뿐이지,
소리내어 읽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부정부패 혐의,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 여부 타진 중..'
중국말인지, 일본말인지,
읽는 내사람 누군가가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
보통 사람은..
읽었는데 막상 이해가 안 되는 글을 대하게 되면,
이해가 안 되는 게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쓴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그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어른인 나도 어떤 글을 읽다 이해가 안 되면,
내 탓으로 돌립니다.
내가 부족해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어렵게 글 쓴 누군가의 잘못은 없을까 하고 되묻긴 싶지가 않습니다.
그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어른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어떠할까.
아이들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은
들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세상일 수 있습니다.
한번 읽고 머리 속으로 다시 재해석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세상.
왜? 꼭 두세번 읽고 생각하며 다시 해석을 해야 할까.
하기 싫지만 어른들이 해야 한다고 하는 그 공부도 그렇고,
매일 흘러나오는 뉴스 자막도 그렇고,
서점에 넘쳐나는 그 잘난 수많은 책들도 그렇고.
쉽게 쉽게 넘어가는,
듣고 읽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는,
그런 쉬운 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건가...
아이들은
묻고 싶을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