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질문

<남쪽바다>

질문(質問)

by 초록빛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왔습니다.

남쪽바다. 그 남자의 고향.

바다내음과 억센사투리가 익숙한 곳.


10년 전,

결혼할 아내와 그 남자의 고향을 첨 밟았습니다.

10년 후 지금,

아이와 손 꼭 잡고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사람은 아이낳고 길러봐야 철이 들고,

부모님 돌아가시면 뒤늦게 철이 든다고 했던가.

귀한 내 새끼 쪼매난 손 꼭 붙잡고 다시 온 아버지 고향.

10년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북받치는 감정이 가슴을 타고 목젖 밑까지 올라와

눈앞에서 눈물로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꼭 쥐었습니다.

아이가 쳐다보았습니다.

"아빠 울어?"

"어, 어, 아니, 아빠가 울긴."

"바람이 차서 눈물이 고인거지.."


1950년 6.25 직전 이었던 것 같습니다.

10살 때 그 아이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싸늘한 시선의 누군가와 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곧 돌아온다는 말만 남기고.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몰랐습니다.

엄마와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아버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밧줄에 묶여 어딘가로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이가 돈을 찔러주면 빼 내 올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만 믿고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쌈짓돈 꼭 쥐고 엄마와 함께,

아빠를 찾아 경찰서, 수감소 등 이곳 저곳 안 가 본 데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낙담하고 집에서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여러사람과 함께 밧줄에 묶여 끌려갔다더라,

배를 타는 것을 보았다더라,

아버지가 밧줄에 묶여 바다 한 가운데에서 수장당했다더라,

아니다,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갔을 거다.

별 소문만 무성할 뿐.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깜깜한 다락방에 틀어벅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곡기도 끊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내려앉은 공포를 혼자 이겨내기가 무서웠습니다.

한달, 두달.

정말이지 원망스런 이 세상, 저주스런 이 세상.

그치만 아이는 깜깜한 곳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족의 생계 때문에.

엄마는 하숙을 치기 시작했고

장남인 아이는 하숙치는 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아빠는 남쪽바다를 걷습니다.

아이 손을 꼭~ 잡고.

그 남자의 아버지가 이슬로 사라졌을 그 바다.

그가 세상을 원망하며 인내하며 헤엄쳤을 이 앞바다를.


아이를 키우며 늦게 철이 들어보니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고,

내 자식이 아프면 내 마음이 찢어지고,

내 아이 작디 작은 손 잡고 걸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뿌듯하고,

아이 볼에 내 볼 갖다대고 비비면

푸근한 내 가족의 고마움이 새록새록 번져나고..


이런 귀한 가족을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바다 저 깊은 곳으로 뛰어들었을 그 남자의 아버지,

나이 40에 내 아내, 내 아이들을 남기고

밧줄에 묶여 바다에 몸을 던졌을 가장의 마음을 생각하니,

아이와 걷는 이 남쪽바다의 파도,

험난했던역사의 파도,

빼아픈전쟁의 파도가

왜 그렇게 집어삼킬 듯 거세고 시퍼렇게 다가오는지.

파도의 일렁임, 물보라의 세찬 매서움으로

왜 그렇게 내 가슴이 울렁거리고 따가운지.


아이와 다시 온 남쪽바다,

그 남자의 아버지를 보러 온 남쪽바다.

내 나이 벌써 오십.

나이듦이 서러워 우울증을 달래러 떠나온 가족여행.

어쩌면 난 다행히도

6.25 전쟁과 같은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빗겨서

큰 우여곡절없이 잘 살아온 것인가?

이 나이까지 죽지않고

아이의 눈망울을 쳐다볼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인가?

다시금 아이 손을 꼬옥 잡아 봅니다.


돌아오는 길.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으르렁~ 으르렁~

내 뒤에서 남쪽바다 파도소리가

지독히도 시리고 검푸르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무서움과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아이에 이끌려 자리를 뜹니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