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분노
다른 심리적 불안이 있는 사람들도 비슷하겠지만 나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잠에 드는 건 그럭저럭 괜찮은데, 자다가 계속 깨게 된다. 잠의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잠에서 갑자기 깬 다음이었다. 눈이 떠졌고 불현듯 이런 생각과 함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국가 재난의 피해자인데 응? 왜 이렇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겠다고 혼자 고군분투를 해야 해?’
그렇다. 나의 트라우마는 내 안에 있는 것이라서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극복해야지 해서 극복하려고 한다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에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게 되면서 기분의 변화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느꼈고, 이 과정이 트라우마 극복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어디까지 슬퍼하면 좀 나아지는 것일까 실험적인 마음으로, 이제는 나의 상처를 열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로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우울증 치료라든지, 노력은 내 마음의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혼자 이러고 있는 게 억울한 것인지, 힘든 것인지 짜증이 확 올라왔다.
난 국가적 큰 참사의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데, 그 당시 그 사고도 결국에는 인재로 판명이 났었는데, 어떤 사회적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혼자서 힘듦을 감수하고 있다가 상처가 덧나니 또 혼자 치료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30년도 더 전에는 심리치료니 사회적 지원이니 이런 건 없던 시절이었다. 보상금을 받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고 아직도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과연 돈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돈이라도 정말 떵떵거리면서 잘 먹고 잘 살만큼 많이 줬으면 모르겠다. 사람이 한 명 죽으면 거기에 딸린 직계가족 세 명의 삶이 망가지고 그 후유증은 평생을 간다.
다행히 지금은 인식이 많이 개선이 되어 사고 후 유가족 심리지원도 되는 것 같지만, 30년도 더 된 나도 이렇게 아파하는데 순간적인 지원으로 아픔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고는 단순히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저지르는 비리가 하나, 둘 쌓인 것이 연쇄작용을 하여 벌어지는 막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과거의 참사로부터 얻은 교훈이 아닌가? 이런 시스템을 만다는 건 분명히 사회의 몫일 것이다. 그러니 사고의 피해자들은 사회로부터 가해를 당한 것이고 책임은 사회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어릴 적 나는 사회로부터 책임과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게 얼마나 억울한 상황인가. 내가 자다가 이불을 발로 차며 일어나서 갑자기 화를 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이 문제와 맞서있는 것 같다. 어떠한 사회적 지지와 관계로 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내 안에서 해소가 안 되는 감정에 한 번씩 복받쳐서 짜증이 확 났던 것이 아닐까.
지금보다 더 슬픔이 몰아쳤던 나날들에는 나에게 의지가 된 건 오로지 내가 결혼으로 꾸린 가족들이었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늘 가족들에게 고맙고, 특히 우울이라는 건 하나도 모르는 감정 기복이 없는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렇게 나는 사회적 보살핌 없이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헤쳐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