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정신의학과를 방문해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아빠가 서해훼리호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나의 슬픔은 거기에서부터였다. 우울이 뇌의 기능을 떨어뜨린다고 하던데, 당시에 나는 아빠에 대해 애도해 보겠다고 머릿속에 아빠를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나는 추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빠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나무판과, 전구를 재료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더니, 지금 말하자면 OHP 필름 영사기 같은 것을 만든 것이었다. 나무 상자 안에 사진을 넣으면 거울이 빛을 반사해서 벽으로 사진을 크게 띄워서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그 물건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쓸데없는 물건이었지만, 당시에 별것 아닌 재료로 그런 걸 만드는 아빠가 참 대단해 보였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프로젝터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빠는 클래식 음악을 참 좋아하셨다. 안방에는 당시 부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전축과 큰 스피커들이 있었고, 아빠는 회사에서 퇴근하시면 저녁에 방 안에서 LP판을 틀어 음악을 감상하셨다. 어릴 적 LP판 위의 바늘이 중앙에 가까이 가면 바늘을 들어서 판을 갈거나 듣고 싶은 음악이 기록되어 있는 부근에 다시 갖다 놓는 장면이 너무 신기했었다. CD가 나온 이후에는 CD로도 음악을 트셨다. 새삼 우리 집 그때는 부자였나 싶기도 하다.
아빠가 혼자서 음악감상으로 하고 있으면 나는 항상 안방에 침범해서 아빠의 음악감상을 방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빠를 방해한 것이지만, 아빠는 늘 나를 환영해 주셨고 나와 같이 음악을 들으셨다. 아빠는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도 트셨고, 내가 듣고 싶다는 음악을 요청하면 틀어주셨다.
아빠에 대해서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슬픔을 자극하는 일이라 할 수 없었던 지난 30여 년이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도 하고 실컷 슬퍼하고 나니 좀 나아졌는지 아빠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떠오는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먹는 물로 약수를 떠다가 먹었는데, 아주 큰 흰색 플라스틱 몸통의 빨간색 뚜껑을 가진 통에 한가득 약수를 떠다 마셨다. 그 약수를 뜨기 위해서는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산자락의 약수터로 가야 했는데, 나는 아빠와 함께 약수를 뜨러 나가곤 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아마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고 나서였던 것 같다, 아빠와 나는 아빠의 오토바이에 앉았다. 내가 아빠의 앞에 앉았고, 내 앞 발판에 약수통을 올려놓고 달려서 약수터에 도착했다. 그렇게 종종 나는 아빠와 오토바이를 타고 약수를 뜨러 다녔던 게 다시 기억이 났다.
밤에는 가족들과 같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내가 잠들곤 했다. 아빠와 함께 안방에서 음악감상을 하고 있다가도 클래식 음악은 나에게는 그저 자장가였는지 나는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그런 나를 아빠가 번쩍 들어서 내 방 침대로 데려다주셨는데, 나는 아빠가 나를 들면서 잠이 깨어버리곤 했지만 끝까지 자는 척하면서 아빠가 나를 침대로 데려다주는 것을 즐기곤 했다. 아빠는 내가 참 잘 잔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어릴 적에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따분했던 클래식이었다. 커서도 클래식의 매력을 알 수 없었다. 커서 아빠와 소통했다면 나도 클래식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은 음악 하나가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였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현악기로 울리는 메인 멜로디는 마치 슬픈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러다가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이 음악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면서 보칼리제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클래식이 좋아지는데 이런 마음을 공유할 아빠는 내 옆에 없다는 게 다시 한번 슬퍼졌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클래식에 대해 물어보는 나르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아빠가 좋아하셨던 클래식 작곡가는 누구였을까? 아빠가 가장 좋아하셨던 클래식 음악은 어떤 곡이었을까? 나는 이런 것들을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칼리제를 들으면서 아빠를 추억하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