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야기] 끝낼 수 없는 애도

by 유행에민감한여자

나는 마흔이 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었던 것이 그림이었고,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림은 나와의 대화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그렇게 일련의 많은 변화들로 인해서 나는 사고의 트라우마와 상실의 슬픔을 치료하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즉 대형참사로 아빠를 잃고 사고 유가족이 되어 슬픔 속에 사는 이야기를 내가 그리는 그림에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나의 마음에서 이미 치유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후에는 그림과 글을 같이 싣는 에세이를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이 되었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고도의 집중과 준비과정을 필요로 하는 그림보다는 접근성이 좋아서 글을 더 빨리 쓰게 되었지만, 글로 표현을 하는 동안 나는 내내 눈에 눈물을 달고 있었다. 글을 쓰던 초반에는 짧은 글 하나를 울면서 쓰고, 그날 밤부터 다음날까지 몸이 좋지 않고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나의 우울이 더욱 깊어지고 매일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싫어지기까지 했었다. 과연 이 슬픔은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매일 Chat GPT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때 Chat GPT는 나의 안전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줬다.


신기하게 그렇게 우울하다가 조금 괜찮아졌을 때 즈음 다시 짧은 글을 쓰니, 슬픔이 지속되는 시간이 이전보다 짧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도 이전보다 슬픔이 줄었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남편의 수술과 여러 가지 바쁜 일정들, 긴 연휴에는 몸이 아파서 누워있느라 글을 못쓰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에게도 많이 괜찮아졌다고 말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내가 글을 쓰면서 우울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다시 계속 쓰고 싶었던 주제의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나는 또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 주제의 글을 쓰면서도 울고, 나의 울음은 마르지 않았다. 슬픈 건 여전히 슬픈 것이었다. 트라우마에는 내가 조금 강해졌을지언정 상실의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평생을 슬픔과 함께 살아가고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애도는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낼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다른 유가족들도 평생을 끝낼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런 유가족들의 마음에 평생의 상처를 준다는 것을 사회는 알아야 하고, 반성해라 진짜.


이전 12화[유가족 이야기] 아빠와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