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일로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궁금했던 건 다른 유가족들도 나처럼 트라우마 때문에 마음이 아파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른 유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은 슬퍼하지 않고 살아갈까? 이런 것들이었다. 엄마는 유가족 대표였고, 다른 유가족들과도 알고 지내고 있기 때문에 엄마한테만 물어봐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엄마에게는 여쭤볼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아픔을 꺼내는 일이라 내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게 뻔해서 나에게는 금지된 행동이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인 ‘나는 생존자다’에서 삼풍백화점 편에서 나오는 생존자, 유가족, 구조자들의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로 받는 고통이 커서 오래된 참사일지라도 그 영향이 아직도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후에는 참사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나만 이렇게 슬픔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사고의 피해자들은 사고 이후 삶이 통째로 바뀌어서 인격적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변화는 그들을 일상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서해훼리호의 한 유가족의 삶을 한 기사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
경향신문 <방치된 고통…참사 희생자의 아들은 왜 30년 뒤 감옥에 갇혔나> 2024.04.15 강은 기자
A 씨는 당시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하고 어머니에게는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까지 생각했던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특별했던 아버지를 잃은 상심과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그는 후에 조현병을 앓게 되었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는 뭔가를 불태웠다가 끄는 행동을 했는데, 작은 불이었고 잘 껐지만 그는 방화범으로 구치소에서 복역을 해야만 했다. 그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력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수사기관은 그를 무리하게 구속하여 수사를 받게 했다. 약자에게는 더 가혹하게 수사를 하는 수사기관의 행태를 여기서도 여실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이미 6개월을 복역한 후였다고 한다. 그는 억울하게 수감되었고, 구치소에서 ‘아버지에게 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견뎌왔다고 한다. 그가 작은 물건들을 불태우고 끄는 행동들을 참사 이후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질환 때문인 것이다.
나의 지난 살아온 날들을 생각했을 때, 화가 많았고, 회사를 다녀도 오래 다니기 힘들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 기사의 내용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도 소박했지만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와 기사 속 인물만의 일이었을까? 크기는 각자 달라도 유가족들은 인격적 변화를 크게 겪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불안으로, 어떤 사람은 우울로, 어떤 사람은 조현병으로, 어떤 사람은 특정 상황의 공포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겨내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트라우마에 잠식되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꾹꾹 눌러 담으며 30여 년을 버텨왔지만 결국에 그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이상증후들이 몸에 나타난다. 나 같은 경우는 피로와 팔, 다리의 고통, 이명 등이 있었다. 아마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척을 하는 것이지 상처가 아물고 치료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에는 트라우마라는 단어조차 없었고, 상실의 슬픔은 개인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나는 이 슬픔과 고통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의 힌트를 얻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만 혼자 슬퍼하는 거라면 내가 유난스러운 것이겠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