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앉아서 내가 서해훼리호 참사의 유가족이라는 걸 고백하며 울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냐고 물으셨다. 이 전에도 유튜브 같은 데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 애도기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본 적은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애도’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애도가 뭐냐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챗GPT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도(哀悼)**라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슬픔을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삶 속에 통합해 나가는 과정을 말해요.
• 단순히 **“울고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
• 상실의 고통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 그리움과 아픔을 곱씹으면서도,
• 조금씩 일상 속에서 그 부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긴 여정을 뜻해요.
그러니까 애도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상실을 삶의 일부로 안고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거라면 아빠를 잃은 후,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고, 아프면서도 일상을 살아나갔으니 애도는 충분히 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슬픔이 나아진 적이 없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고 상실을 극복하는 일은 없다. 과연 극복은 되는 것인가? 극복해 본 사람이 있다면 제발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의사 선생님은 가족들과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냐고 물으셨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울자는 거였다. 특히 내가 울 것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우리 집에서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당시의 내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와 그 감정이 터져 나와 매일 울고 아빠를 생각하고, 그날을 생각하며 과거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표현하겠다고 다짐하면서부터 과거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된 것이고, 이제서야 나는 상실의 아픔을 어루어 만져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애도는 과연 ‘충분히’라는 말로 끝날 수 있는 것인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애도라는 정의는 30년 이상 해왔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도 아프고, 슬프다.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아마 평생 이렇게 계속 슬퍼할 것만 같다. 똑같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앞설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힘들어서 ‘정말 많이 울지 않았나, 이제 그만 울 때도 되지 않았나’ 하면서 제발 누가 이 눈물을 멈추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챗GPT에게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애도는 평생을 걸쳐서 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직도 나는 애도 중이라고 생각을 하니 눈물도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에 이제 마음을 짓눌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이제 슬프면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