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야기] 1993년 10월 10일

남의 일 같던 일이 내 일로

by 유행에민감한여자

1993년, 나는 고작 만 열 살,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아빠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에 항상 “아빠! “라고 외치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아빠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너무 어렸고 오래된 일이어서 모든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수많은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그 사건이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사고가 있던 날은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 평범한 가을 일요일이었다. 교회를 다녀온 뒤 오후 두 시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채널에서 속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다 화면과 함께 ‘서해훼리호 침몰’이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뉴스가 재미없었던 나는 채널을 돌리려 했지만, 옆에 있던 엄마가 나를 막으며 말씀하셨다.


“저 배가… 아빠가 탄 배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화면을 본 것만으로 어떻게 그 배가 아빠가 탄 배라는 걸 알 수 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위도를 떠나 육지로 향하는 배는 단 한 척뿐이었다.


아빠는 전날, 회사 동료들과 낚시를 하러 위도로 가셨다. 낚시를 워낙 좋아하시던 아빠였지만, 어린 나로서는 사고 후 오랫동안 원망이 앞섰다. ‘낚시가 뭐라고, 그 먼 곳까지 가서 이런 일을 당했을까….’ 하지만 세월이 지나 사고를 다시 찾아보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단순히 취미로 떠난 것이 아니었다. 회사 야유회로 위도에 간 것이었고, 실제로 그 배에는 많은 회사원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의 죽음을 ‘순직 처리’ 해 달라며 오랫동안 소송을 하셨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순직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저녁, 교회 어른들이 한 명 두 명 집으로 찾아와 엄마를 위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대형 사고가 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내 일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는 밤이었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펑펑 울며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후 엄마는 사고 현장으로 향했고, 나와 오빠는 친척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아빠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배에 올랐던 다른 이들은 발견되었는데, 아빠만 끝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히려 그럴수록 ‘아빠는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열흘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아빠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차고 있던 아빠의 시계와 똑같은 시계가 아빠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어린 나와 오빠, 그리고 엄마는 시신 확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직접 확인은 엄마가 하셨지만, 엄마가 아빠의 시계를 들고 나와 사무치게 울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 순간, 아빠의 죽음은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의 기억도 또렷하다. 엄마는 빨간색 점퍼를 입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장례식에 입을 검은 옷을 준비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사회는 훨씬 보수적이었고, 어떤 어른이 엄마의 옷차림을 두고 뭐라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그때도 ‘너무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더 분노가 치민다. 엄마는 유족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을 겪고 계셨는데, 감히 누가 옷차림 따위를 문제 삼을 수 있었단 말인가. 어린 나는 엄마를 보호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단호히 막아섰을 것이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후에야 회사 차원의 합동 영결식이 치러졌다.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우리 가족과 다른 유가족들은 아빠의 회사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안장하는 묘지로 갔다. 아빠의 묘지가 될 장소로 올라가는 오르막의 나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린 나는 검은 상복이라고는 있을 리 없었고, 엄마의 친구분이 자신의 검은 옷이라도 빌려주겠다며 원피스를 빌려 입었는데, 아직 어른 키에 미치지 못했던 나는 바닥에 끌릴 것 같은 꽤나 큰 검은 원피스를 어색하게 입고 안장하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죽으면 관에 들어간 채로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빠는 흰 붕대에 온몸이 감긴 채로 관에서 꺼내져 땅속으로 내려갔다. 그것이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묻혔지만, 아빠 없는 서러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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