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야기] 더욱 선명해지는 우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우울이 몰려왔다.

by 유행에민감한여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우울한 게 뭔지 알지도 못했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알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그동안 많은 우울증의 증상들이 있었다. 나이 마흔인데도 밤마다 팔다리가 쑤셔서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잠에는 잘 들지만 자면서도 수시로 깨서 잠을 잘 자는 날이 별로 없었다. 만성피로를 달고 살았는데, 2020년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소파로 걸어가서 소파에 누워있고 오후 3시까지 꼼작도 못하고 누워있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이가 고작 38살이었다. 일주일에 6일은 피곤에 찌들어 있어고 한의원도 다니고 해서 나아져도 일주일에 3, 4일은 늘 피곤했다.


그리고 우울해서 찾아간 병원은 아니지만, 먼저 다녀본 친구가 권유하기도 하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상황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아서 병원을 내 발로 찾아갔고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신체적으로 불편했던 부분이 너무나도 획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삶의 질이 상승되기 시작했다. 나의 신체적 증상들이 우울증의 증상들이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모습도 나와 비슷했었다. 매일 피곤하고 아프셔서 안마 침대에 붙어서 사셨던 게 어렸을 때 엄마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기도 했다. 늘 어딘가 많이 아팠던 엄마였다. 그게 우울증 증상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이제부터 자신의 마음에 대해 살펴보는 노력을 하라고 하셨고, 그 무렵부터 어릴 적 아빠를 잃은 상처들이 몰아치기 시작하며 밤마다 울곤 했던 것 같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내가 너무나 불쌍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 관찰하니 내가 기분이 전보다 가라앉는지,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지 너무나 분명하게 구분이 되면서 우울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들은 기분이 안 좋고 시간이 좀 흐르면 또 기분이 괜찮아지고 긍정적인 생각도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어릴 적 상처를 봉인해제하며 들여다보기 시작한 후부터 (그러니까 그것이 나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꼴이 되었다.) 슬픔이 몰려왔고, 그렇게 펑펑 울고 난 후에는 너무나 선명한 우울이 찾아왔다.


우울한 기분이 찾아올 때면 그런 기분이 드는 내가 너무 싫고 그 시기를 보내는 것이 힘들기 시작했다. 우울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울이 오면 씻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고, 카톡에 답도 안 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 없던 짜증, 열등감 등이 불쑥 생겼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씻을 때도 씻는 행위를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샤워를 할 때면 유독 내 자신이 싫었는데, 정말 이러다가 자신을 해치기도 하겠다 싶기도 했다. 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기는 할까, 과연 이 우울이 끝나기는 할까 하며 우울한 시기를 너무 지루하게 보내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혼자 있는 시작에 유독 강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족들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을 걸고 내 생각을 멈추고 생각을 전환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감사하고, 나를 위기에서 구하는 건 가족 들인 것이다.


이 글들을 쓸 때도 눈물도 같이 흘리면서 쓰고 나면 다음부터 우울이 찾아와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를 돌아보며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 나에게는 상당한 에너지 소비이고,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남는 에너지가 없는 것 같다.

이 그림은 나의 우울을 표현한 그림이다. 마음이 힘들 때면 고양이 얼굴을 그릴 수가 없었다. 고양이 얼굴을 그리게 되면 고양이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고양이의 얼굴이 그토록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이 고양이의 뒷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안개가 껴서 사방이 보이지 않는 곳에 뒤돌아 앉아있는 고양이의 모습은 마치 내 모습과 같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곧 시간이 지나 해가 위로 솟으면 안개가 걷힐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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