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부터 어깨가 너무 아파서 운동으로 해결하고자 동사무소 운동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7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니 퇴근 후 저녁을 후다닥 먹고 나가야 한다. 8시 반에 끝나면 살림하러 부랴부랴 집으로 온다. 직장다니는 엄마가 운동 다녀오는 길은 늘 숨이 찬다. 이렇게 운동을 다닌 지 6개월쯤 되니 어깨 통증도 완화되고 오가는 길을 살피게 되었다. 고양이 엄마에겐 고양이가 제일 먼저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희고 검은털이 인상적인 작은 고양이가 내게 다가왔다. 흰 얼굴에 검은 털이 양쪽 눈에 역삼각형을 그리고 내려와 선글라스를 낀 얼굴이다. 나는 그 고양이를 ‘선글라스 그녀’라고 부른다. 줄여서 ‘썬글’이다.
‘선글라스 그녀’가 내 마음에 쓰이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늘 어느집 창가에 앉아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은 오래된 빌라의 반지하다. 고양이가 앉아서 들여다보면 텔레비전 보듯이 그 방이 보인다. 썬글이가 그 댁에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도 궁금했다. 썬글이는 해가 좋아도, 비가 와도, 늘 그 창문에 앉아 있다. 이번(2024~2025) 겨울은 유난히 추위도 빨리 오고 영하 15도를 넘는 밤도 많았다. 그런 혹독한 밤을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좀 풀리니 썬글이는 어제도 오늘도 또 그 창문 앞에 앉아 있다. 아, 정말 인정도 없다, 저렇게 고양이가 앉아 있는데 모른 척을 하다니...
늘 애처롭게 앉아 있는 썬글이가 안타까워서 우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사료를 간식처럼 주기 시작했다. 운동가는 길에 주고, 돌아오는 길에 와 보면 싹 먹었다. 우리 아이들과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썬글이한테 간식을 주면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썬글이의 생활이 보였다. 우선 썬글이는 아주 어린 나이에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귀 한쪽 끝이 잘렸다. 내 눈에 띄기 시작할 때도 수술하기에 어렸는데 벌써 귀에 난 상처가 아물어 있으니 얼마나 일찍 수술을 받은 것일까. 짐작건대 구청에서 고양이중성화사업을 하자마자 이른 봄에 수술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썬글이를 신경쓰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누가 이 아이에게 신경 써줄까 둘러보기 시작했다.
썬글이가 앉아 있는 곳 건너편엔 주택이 있는데 늘 검고 큰 차가 주차되어 있다. 그 차 밑에 가끔 사료가 있다. 아마 이 댁에서 보살펴 주시는 것일까? 그런데 밥을 주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캔사료를 주시는데 그냥 길에 쏟아놓으신다. 햇반 그릇이라도 사용하시지... 썬글이는 도로에 부어져 있는 그 사료를 핥아 먹는다. 그것도 맘 편히 먹지 못하고 늘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살핀다. 챙겨주셔서 감사한 일이지만 디테일이 좀 아쉬웠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간식이 아니라 사료를 주자고 마음먹은 것이.
그래서 플라스틱 그릇 두 개를 마련해서 하나는 사료, 하나는 물그릇으로 사용했다. 장소는 대담하게도 썬글이가 자주 앉아 있는 곳으로 정했다. 썬글이가 앉아 있기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인 모자공장 공터이다. 누가 치우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여름이 되고 있었기에 잘 먹고 더우고 이기고, 겨울날 준비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료는 우리 아이들이 먹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한다. 밖에 있는 아이가 안에 있는 아이보다 더 잘 먹어야 한다. 최소한 더 못 먹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좋은 사료를 주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나는 캣맘이 되었다.
캣맘은 캣 만큼이나 눈치를 보는 생활이다. 밥자리가 없어질까, 누가 보고 해코지할까, 지나가며 한 소리 할까, 공장에서 싫어하실까 걱정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직장에서 부당함(2023)에 떨다 전사가 되어있었기에 나는 캣맘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책잡힐 일을 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먼 곳에 밥을 두었고, 밤에만 주어서 낮에 밥 때문에 고양이나 새가 오지 않길 바랐으며, 그릇은 자주 치워서 지저분하지 않게 했다. 그리고 모자공장엔 특별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바로 눈을 치워드리는 것이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상계동에 눈이 많이 내렸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경사로이고, 구청에서도 큰길만 치우기에 공장 앞은 늘 눈이 쌓여있다. 공교롭게도 주말에, 공휴일에 눈이 많이 내려서 나는 밤마다 몰래 눈을 치웠다. 모자공장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밥자리를 모른 척해주시는 것이 고맙기 때문이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점점 자연이 사라진다. 덩달아 동물들의 터전도 줄어든다. 도시의 환경은 점점 열악하다. 더위가 길고 심하니 에어컨을 많이 튼다. 그만큼 실외는 점점 가열되고 한여름 도로는 숨 쉬고 걷기도 어렵다. 그런 곳에 썬글이가 사는 것이다. 한겨울은 더 가혹하다. 마실 물은 금방 얼고, 눈이 많이 내려 염화칼슘이 흰 무늬를 그리며 말라붙을 정도로 많이 뿌려져 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동물들에게, 인간의 하나로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부디 인간의 해악을 용서해주기를 감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