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세 시대가 나에게도 열린다면 나는 딱 절반인 50년은 고양이 없이, 그리고 나머지 50년은 고양이와 함께 보낼 것이다. 처음 만난 고양이 홍이와 21년부터 함께 지내니 생명을 향한 내 눈은 점점 밝아진다. 아침에 편안히 눈을 뜨고 길게 몸을 늘리는 우리 고양이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할 때가 많다. 벽 하나 사이로 혹독한 겨울을 밖에서 나는 고양이가 많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고양이를 아예 안 본 것은 아닌데 너무 무관심했다. 이런 무관심엔 바쁜 내 젊은 날도 이유가 되겠지만 어린 시절 나를 할퀸 그 녀석의 지분이 크다.
내가 여섯 살 때쯤 아랫집에 자주 놀러 갔다. 먼 친척 집인데 엄마 없이 놀던 기억이 많은 것을 보니 엄마가 자주 나를 맡기셨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오십 보 정도 떨어진 언덕 아랫집이다. 가파른 길은 내려가면 마당에 매여 있던 소와 커다란 개가 나를 반겼다. 집 한쪽에 넓은 닭장이 있어서 닭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밥도 같이 먹고, 쪽 찐 머리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길고 흰 머리를 감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다. 숱은 별로 없으셨지만 무척 길었다. 어느 날엔 툇마루에 새끼고양이가 있어서 귀엽다고 만지는데 고양이가 나를 할퀴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을 보면 예상치 못한 큰 공격이었다. 어린 고양이와 어린 사람의 싸움에서 펀치 한 방에 사람이 완패했다. 그때부터 고양이가 무섭다고 생각하여 이후로 고양이한테 정이 가지 않았다. 자세히 보지도 않아서 고양이가 예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뒤란에서 세수하다가 울타리 뚫린 틈으로 보이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에 수줍음이 많고 나약한 내가 그날은 고양이와 눈싸움을 해서 꼭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쏘아봤다. 내가 눈싸움에서 이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별 영양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간 것이다.
다음 내게 찾아온 고양이는 어느 겨울날 고향집 뒤뜰에 죽어 있던 고양이다. 노랑색인지 회색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처음 발견했다. 우리 엄마도 항상 고양이가 고기나 생선을 물어갈까 봐 단속을 엄청나게 하셨는데 그 겨울 시골에서 고양이가 아파서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시절 시골에선 지킬 것이 많아 단속을 잘해 고양이가 먹을 것이 정말 없었다.
다음 기억은 우리 수원집이다. 엄마는 수원으로 이사한 뒤에도 장항아리를 잘 관리하셨는데 거기에서 사달이 났다. 봄을 맞이해 항아리를 잘 씻고 묶는 내 가시라고 물을 담아놓으셨는데 거기에 고양이가 빠져 죽은 것이다. 엄마가 치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를 몇 년이나 곱씹었는데, 이제 고양이 엄마가 되고 보니 그때 물에서 허우적거리던 고양이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도시의 주택가도 먹을 것이 없고 위험했다.
세월이 흘러 2013년 일이다. 그때 30년 만에 초등 동창들을 만나기로 했다. 상계동에서 수원으로 장장 2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단단히 외출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전날 내리던 폭우도 말끔히 그쳐 화창한 날이었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정말 주먹만 한 새끼고양이가 물 폭탄을 맞고는 간신히 도로에 나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머리털이 젖다 못해 이리저리 물 맞은 대로 털이 누워 있었다. 비가 그친지 언제인데 몸이 이렇게 젖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먼 길 간다고 시간 맞춰 나선 길이어서 선뜻 고양이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누군가 나타나서 구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속으론 혹시라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견뎌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마음도 조금 갖고 있었다. 모임에 가서도 계속 새끼고양이 생각이 났다. 다 늦은 밤에 집에 오는 길에 보니 당연히 고양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셨을까, 아니면, 아니면...
살면서 후회되는 순간이 몇 번 있다. 나에겐 그날 어른답지 못하게 그냥 새끼고양이를 지나친 일이다. 물론 그 당시에 고양이 돌보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해 잡으려다가 놓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가까이에 동물병원이 있었다. 너무 바삐 살다 보니 작은 옷을 걸려있던 그곳이 유아복 가게인 줄 알았다. 꽤 오랫동안 착각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보행신호를 기다리다가 찬찬히 보니 강아지 옷이었고, 그곳은 동물병원이었다. 바쁘게 살아도 옆은 좀 보고 살아야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친구들과 약속에 조금 늦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아기고양이가 위급하니 못 갔어도 어땠을까. 그때는 친구들을 30년 만에 만난다는 기분에 너무 달떠 있었다. 바쁜 도시인들이 사는 도시도 고양이들이 손 내밀 곳이 못 된다.
이제는 옆을 많이도 보는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홍이를 만나면서 고양이에 대한 지식과 실천력이 높아졌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고양이는 행복하도록 돕고 있다. 한 인간의 ‘점’과 같은 노력이더라도 충분히 고양이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만 내 노후가 큰 타격을 받지 않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