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은 사랑하는 존재가 아플 때와 헤어질 때이다. 그 존재가 인간일 수도 있고 고양이일 수도 있다. 한때 우리 셋째 고양이였던 빈이를 회상해본다. 빈은 검은 고양이인데 콩처럼 작았다. Black Bean, 검은 고양이 빈이다.
어미 없이 정원수 밑에 숨어 울고 있던 검은색 아기 고양이가 내 눈에 띄었다. 철쭉 관목 사이에서 도망도 안 가고 꼼짝없이 앉아서 울던 고양이를 꼬박 이틀간 지켜봤다. 어미가 포기한 고양이가 확실했다. 손 내밀면 잡힐 것 같았는데 막상 잡으려 하니 빠르게 도망갔다. 딸하고 같이 며칠 더 시도했지만 잡히지 않고 애만 태웠다. 며칠 후면 아파트 나무 소독이라는데 어찌할지 까마득했다. 이 아이가 관목 밑에 숨어 있는데 소독약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루밍이 일상인 아이들이 농약을 맞거나, 닿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구조를 서둘러야 했다.
나무소독 당일이 되었다. 도저히 퇴근 시간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내가 출동한다고 해서 구조할 자신도 없어서 동네 지인에게 연락했다. 못 그리는 그림으로 숨어 있는 위치까지 그려서 보내드렸다. 내 글씨와 그림이 무
척 창피했지만 생명을 구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고양이 구조 능력 최고치인 지인께서 오전 11시쯤 빈이를 무사히 잡았다고 연락하셨다. 아이는 배수로 속으로 숨어들었다는데 한참을 숨바꼭질하다가 잡으셨다고 연락주셨다. 가까스로 나무소독 시간 전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퇴근 후 빈이를 넘겨 받아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아기 고양이가 차 타는 것 싫어할까 봐 일부러 다니던 병원에 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갔다. 잘해주시면 빈이는 이 병원에 계속 다니며 병원 다변화도 꾀해볼 심산이었다. 이전에 밀이 안과 치료하며 선생님이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에 예약했을 때 별말씀 없으시더니 ‘길고양이 데려온다고 하셨으면 말렸을 것’이라고 한다. 그제야 동물병원도 길고양이를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 없는 고양이가 받는 차별은 병원에서도 존재했다. 서러워라, 고양이 신세.
빈이의 조막만 한 얼굴에서 말라붙은 눈곱과 코딱지가 절반은 차지했다. 진료 소견으로 고양이 호흡기 질환인 허피스와 기생충 등이 의심되었다. 귀청소를 하면서 너무 더럽다고 하시더니 나머지 귀는 청소를 안 해주시고는 약을 사다가 집에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어미도 없이 며칠 밖에서 보내고, 잡히고, 병원도 오고, 스트레스가 많을 테니 집에서 하겠다고 말하고 순순히 소독약을 사 왔다. 집에 오니 웬걸, 낯선 고양이 귀에 손도 댈 수가 없었다.
그후 빈이는 안방 화장실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기침과 목에 가래 낀 소리가 계속되어 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에는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갔다. 허피스가 의심된다고 하시고, 기생충 알도 관찰되었다. 정말로 작은 아기가 주사도 잘 맞고, 구충 처리하고, 허피스를 견뎠다. 생명은 위대하고 대견했다.
이렇게 시작된 빈이와 인연은 쉽지 않았다. 홍이가 스트레스성 구토를 몇 번이나 했다. 새로운 만남에서 항상 연장자는 패자가 된다. 결국 홍이의 희생과 밀이의 배려로 합사에 성공하고 셋이 잘 노는 시절이 왔다. 밀이는 언니라고 빈이한테 그루밍도 열심히 해주고, 따끔하게 맴매도 했다. 그렇게 삼남매가 잘 사는가 했는데, 빈이한테 또 다른 불행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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