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10_고양이 복막염을 이겨낸 밀

by 홍홍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도 치명적인 질병이 여럿 있다. 둘째 밀이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어렵다는 고양이 복막염에 걸렸다. 밀이가 복막염에 감염된 경로는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떠난 빈이라고 생각된다. 갑자기 먼 여행을 떠난 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겼다.


20220628_210555.jpg

우리는 고인을 보낼 때 마지막 모습을 보기도 하고 차마 보지 못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차갑게 몸이 식은 빈을 잠시 우리 집에 데려왔다.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홍이랑 밀이 혹시라도 충격받을까 봐 제대로 작별 인사를 시키지 않았다. 빈소에 놓아줄 사료만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화장장인 양주까지 왕복으로 다녀오려면 서둘러야했다. 햇빛이 서쪽으로 길어지고 있었다.

20220630_190028.jpg

코로나 기간이라 휴가도 제대로 못 나오던 막내가 마침 휴가 나와 있었다. 아들은 이제 복귀할 시간이 다 되었다. 아들에게는 조심해서 잘 가라는 인사만 간단히 하고 헤어졌다. 진해까지 가야 하는 아들도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갈 것이었다. 집에 아기고양이가 와서 좋아했는데 휴가 나온 사이에 고양이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들은 군대에서 챙겨주고 있는 고양이에게 줄 사료를 잔뜩 등에 메고 갈 것이었다. 화장장으로 가는 내내 빈과 아들에게 보내는 인사를 속으로 되뇌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내 마음도 정처 없이 흘러갔다. 빈을 안고 가는 딸이 눈엔 눈물이 계속 그렁그렁하다.

20220703_111526.jpg 빈이 제법 키가 자랐구나.

그렇게 빈을 보낸 뒤 홍이와 밀이 빈을 많이 찾았다. 있던 곳 냄새도 맡고, 어디 숨어 있나 찾았다녔다. 밀이 우울증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잘 놀지도 않고, 자는 시간이 늘었다. 아, 동생을 잃은 슬픔이 크구나. 여자아이라 감수성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20220521_134022.jpg

그 후 석 달이 지나도록 밀은 놀지도 않고, 자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동생의 빈자리가 정말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월 들어 눈에 띄게 안 먹고, 자는 시간이 늘고, 활동성도 엄청나게 줄었다. 아파도 내가 집에 오면 나와 보기라도 했는데 계속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아침마다 캣스틱은 달라고 졸랐다. 그러다가 캣스틱 마저 안 먹는 날이 왔다.

정말 큰 일이구나 싶어 퇴근 후 병원에 데려갔다. 몸무게가 2.5가 되어 있었다. 빈이 떠날 당시 밀이 몸무게는 3.7정도 되었는데 석 달 만에 살이 쭉 빠졌다. 원래도 길고 날씬했는데 부쩍 뼈만 남은 모습에 나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열도 있어서 큰 병원에 가라는 조언도 받았다.

20220618_220040.jpg

다음 날 조퇴를 하고 큰병원에 가서 검사했다. 빈에 이어 밀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손도 떨렸다. 사진도 찍고, 피검사도 하고, 촉진도 했는데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는 소견이었다. 나는 동생을 잃은 상실감 얘기를 여기서도 했다. 그때부터 밀이 변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상실감은 잠시이고, 이렇게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럼 도대체 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동네병원 원장님이 다른 예방 접종은 다 되어 있는데 복막염만 안 맞아서 복막염을 의심했다. 큰 병원에서도 다른 지표는 다 괜찮은데 피검사 결과가 복막염 진단 수치와 경계에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통 고양이라면 0.7-0.8 사이인데 밀은 0.4가 나왔다. 보통 복막염 고양이는 0.3 수준이니, 밀은 경계에 있어서 복막염 가능성이 50-60%라고 예측되었다.

일단은 밥을 안 먹으니 식욕 촉진제를 먹기로 했다. 아침, 저녁에 약을 먹고 호전되는지 보기로 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밤부터 투약을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입맛이 돌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음 날 선생님과 통화하니, 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월요일에 다시 내원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일요일에 일이 생겼다. 아침부터 밀이 좀 따뜻하다고 느껴지긴 했었다. 그러다 그만 딸 침대에 대변을 보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심상치 않았다. 바로 병원에 전화하고 밀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열이 40.1도. 바로 복막염 신약을 투약하기로 했다.

20220607_080055.jpg


빈이 없는 상실감도 있었지만, 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남겼다. 복막염은 원인도 아직 잘 모르고,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힘들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에 잠복하고 있다가 변이를 일으키면 발병한다는 것이다. 허피스와 같은 호흡기 질환이 있었던 빈과 지내던 기간에 밀이 감염되고, 천천히 병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빈을 원망하지 않는다. 미숙하게 대처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격리 원칙만 잘 지켰어도, 빈을 좀 더 세심하게 돌봤어도, 두 고양이가 덜 힘들었을 것이다. 많고 많은 꽃 중에 너를 만났다. 나를 만나 행복했으면 했는데 아팠다. 이제는 내가 아프지만 그래도 이겨낸다. 또 다른 꽃이 나에게 기대있으니.

20220612_114351(0).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양이9_빈은 내 가슴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