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존재가 아파할 때,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보아야 한다. 나는 밀이 여동생을 잃은 상실감 때문에 아파한다고 생각했다. 빈이 떠난 뒤 3개월간 밀을 조금씩 잠식했던 것은 동생을 잃은 슬픔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는 서둘러 없애야 한다. 둘째 고양이 밀이 복막염 가능성 50-60%의 확률이지만 신약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고양이 복막염은 걸리면 거의 죽는 병이었다. 그런데 밀이 아플 때쯤 신약이 개발되어 치료에 희망이 생겼다. 신약을 먹은 지 10일이 되니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사냥놀이에 관심을 보이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2주 정도 지나니 소파 위로 뛰어오르고, 오빠랑 장난도 하고, 냥펀치도 제법 날렸다. 무엇보다도 몸무게가 2.6kg이 되었다. 10월 말에 한 병원에서는 2.5kg, 다른 병원에서 2.33kg으로 측정된 것에 비해 살이 올랐다. 이전 몸무게 3.7kg을 회복하기엔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동물과 함께 살 때 마음도 지갑도 두둑해야 한다. 내 지갑은 얇지만 그래도 돈이 조금씩 채워지니 다행이다. 고양이 복막염 약은 몸무게에 따라 먹는 양이 달라진다. 무게 2.33kg인 경우 1주일에 66,000원이 든다. 이렇게 12주를 먹으면 비용이 792,000원이다. 시작 당시 몸무게일 때의 약값이니 점점 비싸질 확률이 높다. 여기에 부가세 10%가 따로 붙는다. 복막염 치료비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감당할 만했다. 긴장을 많이 하는 밀이 성향상 경구용을 투약해야 했는데 마침 경구용이 더 저렴하다. 꾸준히 주사 맞으러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밀의 성향이 지갑 사정엔 도움이 되었다. 밀을 구할 수 있다면 치료비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밀이 언니, 오빠도 20만 원씩 보탰다.
복막염 약이 잘 들으면 복막염이 확실한 걸까? 사실 확진이 안 된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했기에 의문이었다. 약을 먹고 차도가 있어 좋지만, 부작용도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동네병원에서 복막염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 들었다. 약이 엄청 비싸서 보호자가 주사약을 직접 해외에서 구매하고, 병원에서는 주사만 놓는 방식으로 치료한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문제도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직 승인되지 않은 약이었다. 그래서 정식 수입이 어려운 상황이라 보호자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해외 직접 구매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간 병원에서는 처방해 주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처방해 주시지?, 하는 의문이 들던 어느 날 병원에서 이제 처방을 못 하게 되어 내가 직접 사야 한다고 구매 사이트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복막염 카페가 있으니 가입해서 직접 정보를 얻어보라고 하신다. 나도 카페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동안 선생님께 의지하고 있었는데 치료 종료 2주를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직접 구매해 보니 약값이 훨씬 비싸다. 2.5~4.0kg용 14일분이 30만 원이었다. 거기에 배송료가 12,500원이 추가되었다. 몸무게 범위가 너무 넓어 괜찮은가 싶기도 했다. 다니는 병원에서는 몸무게 10그램 늘 때마다 복용량이 달라졌는데 말이다. 치료가 2주 남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니면 한 번만 이렇게 사도 되니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급하고 중요한 일엔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든다.
약을 다 먹더라도 완치될지 확신하기 어려워 복막염 카페에도 가입했다.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여러 질문에 답하고, 병원 진찰자료를 보내야 했다. 다행히 밀이 진단받을 때 받은 자료가 있어 무사히 가입했다. 고양이가 아파서 알아보고 물어볼 것도 많고 불안한데, 가입이 너무나 까다로워 애가 닳았다. 복막염 카페에 가입하는 분들은 다들 발등에 불 떨어져서 급히 가입하실 텐데 정말로 고양이 복막염 환자 보호자인지 가려내는 장치가 여러 단계였다. 울고 싶었다. 그래도 내 맘을 아시는지 자료 올리는 족족 빠르게 가입을 진행해 주셨다. 일단 가입이 되니 일요일도 가리지 않고 새해 첫날에도 빠르게 답변을 주셔서 운영자분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부디 많은 분이 집단 지성을 이용해 고양이 복막염 치료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밀은 12주간 약을 먹고 치료를 완료했다. 그 후 2년 동안 계속 지켜봤다. 이 2년간 예방접종도 금지되었다. 복막염이 재발하면 예방접종으로 인한 몸의 작용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을 무사히 넘기고 밀은 다시 병원에서 예방 접종을 했다. 어느덧 성숙해진 밀은 더 이상 고양이 살려!, 하고 소리치지 않았다. 밀과 나는 그 병을 이겨내며 더 성장했다. 그래도 다시 그 시절, 고양이 살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밀을 다시 만나고 싶다. 고양이의 시간도, 인간의 시간도 속절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