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와 만나던 시절, 나를 만나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아는 척해주어서 정말 신기했다. 동물과 처음으로 친해지기 시작하니 괜히 우쭐하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다. 그 뒤로 홍이와 친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홍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을 되돌아 보고, 고양이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처음에 홍이와 친해진 것은 산책이다. 막내와 함께 산을 오르려는데 홍이가 신기하게도 우리를 따라왔다. 세상에나! 너무나 신기해서 계속 감탄하며 걸었다. 놀이할 때 쓰던 털실 장난감을 산책을 시작할 때, 산책하고 집에 데려다 줄 때 홍이를 유도하는 용도로 잘 썼다. 홍이는 산에서 살던 고양이라서 산책로를 능숙하게 다녔다. 같이 잘 내려오다가 가끔은 소녀들을 쫓아가서 어이없는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해야한다. 고양이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받아 본 나는 그만 연어를 선물하고 말았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장난감 가게에 가서 여러 생선 중에 신중하게 연어를 골랐다. 생각과 달리 홍이는 연어를 안 좋아했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떻게 된 얘기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홍이는 산골 고양이여서 생선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든 털실 장난감은 무척이나 애용했다.
세 번째는 간식이다. 나는 홍이가 먹는 사료보다 좀 더 좋은 사료를 사서 간식처럼 주었다. 그리고 이가 썩지 않게 도와주는 이빨과자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샀다. 홍이는 간식을 먹을 때는 항상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저분한 고양이를 무릎에 올렸다고 걱정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홍이가 누구 무릎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처음 본다며 입양을 권유하기도 했다. 여하튼 사람이든 고양이든 먹을 거 앞에서는 약하다.
네 번째는 매일 만나기이다. 나는 비가 와도 홍이를 찾아갔다. 비오는 날 황태를 여덟 번이나 헹구어서(염분을 빼느라) 간식을 만들어갔다. 홍이 집에 가서 “홍아~, 홍아~” 하고 불렀더니 홍이가 나왔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해서 비 맞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도 홍이가 비를 꾹 참고 나를 만나러 나오고, 내가 만든 간식을 물고 들어가는 모습에 감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이야기이다.
다섯 번째는 스킨십이다. 엉덩이를 두드려주거나 쓰다듬어주면 아주 좋아한다. 어미고양이가 손질해주듯 콧등부터 뒤통수 쪽으로 얼굴을 쓸어주면 눈을 감고 음미한다. 마치 먼 기억을 찾아 뛰어다니는 것 같다.
그다음은 칭찬하기이다. 홍이가 실제로도 정말 예뻐서 우리 가족은 “홍이는 왜 이렇게 예뻐?”,라는 말을 달고 산다. 산에서도 홍이한테 자주했던 말이다. 언제나 감탄이 나오는 홍이의 미모를 보면 절로 나온다, “홍이는 왜 이렇게 예뻐?”
마지막은 편들어주기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정의감이 넘친다. 의외로 정말 많은 사람이 주인없는 동물을 함부로 대한다. 어떤 이는 계단을 오르다가 홍이를 보고는 “아니 고양이가 왜 여깄어?”,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산에서 혼자서 가곡을 부르고 분위기 잡더니만 홍이가 다가가니 “하악!”하고 홍이를 위협했다. 조금 전까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산에서) 우아하게 노래 부르던 사람이 산고양이를 보고는 하악질을 해댔다. 큰개와 산책 다니는 분들도 고양이를 함부로 대한다. 사냥개 세 마리를 매일 데리고 다니는 분은 아예 위협을 했다. 저리 가라며 소리도 질렀다. 명분은 그 개들이 사냥개라서 물 수도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 억양과 어조는 매우 불쾌했다. 이럴 땐 내가 나선다. 홍이 옆에 서있거나 홍이를 가려주었다. 그러면 한결같이 “주인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직은 아니고 입양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좀 누그러진 태도로 홍이를 한 번 더 보고 지나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보다 약한 존재도 존중해줄 수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홍이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모습을 적어 보았다. 홍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홍이를 만나고 관계맺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사람과 한 고양이가 서로를 이해하면, 또 다른 동물과 사람을 이해 못 할 일이 없다. 관계맺기는 서로에 대한 이해, 사정을 이해하는 역지사지, 측은지심의 출발점이다. 그러면 다른 동물을 해치는 일, 다른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