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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13_입양의 빛과 그림자

by 홍홍

인간의 집에 사는 고양이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고양이가 살던 터전에서 인간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윤리적일까? 고양이는 입양을 허락했을까? 재워주고, 밥 주고, 물 주면 되는 걸까? 지금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지만 홍이를 입양하던 시절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큰 고민이 있었다. 심지어 서둘러 결론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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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홍이를 숲에서 데려오는 것이 홍이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홍이는 가을에 태어나 한겨울을 밖에서 났다. 추위를 이겨내고 숲에 초록물과 분홍물이 한창 무르익을 때 그 숲에서 홍이를 떼어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가? 홍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얼어붙어 있던 산이, 지난 가을에 떨어진 상수리잎으로 누렇던 산이 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나무는 짙은 고동색이 되고, 그 끝엔 연분홍 진달래 꽃망울이, 연두빛 아기잎은 수줍게 손을 폈다. 딱따구리도, 청설모도 제 뜻대로 숲을 누볐다. 홍이를 데려오던 날엔 진달래며 벚꽃이며 제비꽃이 한창이었다. 노란 개나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복사꽃마저 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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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가득해 지는 아름다운 숲에서, 이제 갓 겨울을 난 어린 생명에게서 봄을 빼앗아도 되는지 생각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그래도 조금 있으면 더워지는데 어서 홍이를 데려가는게 맞다고도 생각했다. 결국 홍이를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래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홍이를 입양하여 집에 두고 홍이가 먹던 약수를 뜨러 찬란한 봄길을 혼자 걸으면 눈물이 나왔다. 홍이가 없는 숲은 점점 더 봄이 짙어졌고 더욱 찬란해졌다. 그 숲에 홍이만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사흘을 울며 다녔다. 홍이가 집에 있어도 홍이없는 숲은 쓸쓸하고 적막했다. 홍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인간의 집이 맞을까? 숲에서 자유롭게 뛰어야 했을까?

20210404%EF%BC%BF142043.jpg?type=w3840 입양하던 날 피어있던 불암산 제비꽃

홍이와 내가 같은 언어를 쓴다면 여러 번 확인했을 것이다. 홍아, 우리 집에 가고 싶어, 여기 있고 싶어? 홍이의 언어를 배우지 못해 인간의 언어로만 얘기했다. 홍이는 알아들었겠지만, 인간의 말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눈빛으로 얘기했다. 우리가 헤어질 때 계속 따라오는 것으로 뜻을 전했다. 새벽에도, 저녁에도, 심지어 밤에도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주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헤어질 수 없었다. 연인들이 더 이상 저녁마다 헤어질 수 없을 때 결혼하지 않던가. 홍이와 난 저녁마다 헤어지는 게 싫었다.

20210404%EF%BC%BF143844.jpg?type=w3840 케이지 익숙해지기 연습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해 주는 것, 그리고 홍이가 먹던 물이라도 떠다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길을 나섰다. 홍이 없이 오르는 산책로는 쓸쓸하기도, 어서 집에 오려고 발길이 빨라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름다운 4월의 숲에서 홍이를 데려온 것은 너무한 것 같았다. 아니다, 더 늦으면 안 되었다. 나는 잘했다.

20230623_201709.jpg?type=w773 홍이 없는 산책로에서 눈물 흘리며 서 있는 내 긴 그림자


더 늦었다가는 발정이 시작되고 홍이는 숲의 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다. 여름이 되어 귀에 진드기가 들어가 가려움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인 콩순씨처럼 3년의 삶만 살았을지도 모른다. 겨울은 혹독했을 것이다. 나는 잘했다.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길고 긴 여름, 영하 15도 이하가 되는 불암산의 겨울이 길어지면 난 안도한다. 홍이가 견뎠을 더위와 추위를 피하게 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맛에 맞는 사료를 주고, 깨끗한 물도 준다. 여름과 겨울에는 내가 잘했구나, 싶다. 하지만 봄과 가을이 되면 또 의구심이 생긴다. 이 계절을 홍이도 만끽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도 타고, 달리기도 하고, 친척 고양이들과 장난도 치고... 내가 빼앗은 자유가 미안하다. 안락함과 자유가 충돌한다.

20210410_110335.jpg?type=w773 홍이가 떠나온 숲


사실 인간에게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처음엔 홍이뿐이었지만 이젠 집에 고양이 네 마리가 산다. 어쩌다 보니 썬글이와 폐가에 사는 고양이 가족의 밥도 책임지게 되었다. 한 달 사료 값이 거의 30만원에 육박한다. 밖에 사는 고양이에게 싼 사료를 줄 수가 없어 우리 집 아이들이 먹는 사료를 준다. 혹독한 환경에 사는 고양이들이 집고양이보다 더 못 먹으면 안 된다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병원비도 든다. 모래값도 든다. 내 노후가 조금씩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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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빛이 있다. 고양이들의 아름다운 얼굴과 둥근 몸을 보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고운 털을 쓰다듬고 비비면 털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에 심장이 녹는다. 같이 놀며 나도 많이 움직이고 활동이 많아진다. 같이 웃고 떠들게 된다. 무엇보다도 독립적인 삶을 사는 자녀들과 대화가 더 많아진다. 말 없는 딸과 웃으며 얘기하고 수시로 문자 대화를 나누고 홍이 사진이 바쁘게 오간다. 나는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싶어 작가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다. 홍이와 나에게 태양이 높이 떠올라서 빛은 가득하고 그림자는 짧다. 그림자가 길어지지 않게, 태양이 항상 머리 위에서 빛나게! 설사 그림자가 길어지더라도 주름진 얼굴이지만 같이 석양을 즐길 것이다. 아직은 우리 모두 젊고 건강하다.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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