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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16_추위의 보편성

by 홍홍

고양이 엄마가 되니 걱정이 많아진다. 겨울이면 밖에 사는 고양이가 겪을 추위가 신경 쓰인다. 책을 읽으면 추위에 대한 글귀가 자연스레 마음에 들어온다. 이어령 선생님은 추위가 보편적인 고통임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신다. 마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다른 건 다 외면해도 냄새는 피할 수 없다는 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숨 쉬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숨을 참을 순 없기 때문이다. 추위도 마찬가지다. 밖에 있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추위에 떤다.

20210215_164252(1).jpg 밖에서 겨울을 보낸 홍이, 2021년 2월

타자의 고통을 체감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이 있어. 바로 추위지.

겨울날 거리에서 떨며 구걸하는 어린애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돈을 주든가 피해 가든가 하지. 그 아이가 배고픈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추위는 다르거든.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194쪽)


지난 겨울은 11월부터 찾아온 때 이른 추위로 서둘러 겨울맞이를 했다. 우리 동네는 수락산과 불암산에 연해 있어 언덕을 운명으로 여기고 산자락 생긴 모양대로 줄지어 집을 짓고 산다. 집에 가는 길은 차가운 산바람이 내려오는 길이다. 이 바람을 거슬러 언덕을 오른다. 숨이 차지만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들어간다. 사람과 같이 산책 나온 개들은 호기심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오줌도 누면서 여유있고 당당하게 걷는다. 밤이 되면 큰 개가 많이 나온다. 산바람은 더 날카로워지지만 이렇게 큰 개나 있나 싶을 정도로 큰 개가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을 보면 춥지만 부럽기도 하다. 따뜻한 집에 있다가 배변이나 산책이 필요할 때 잠시 나왔을 테니 말이다.

20210216_110121.jpg 추위에 움츠린 홍이, 2021년 2월

겨울 햇빛이 따뜻할 때 고양이는 잠시 나와 밤새 차갑게 식은 몸을 데운다. 고양이들은 처마 밑에 엎드려 있거나 바람을 등지고 앉아 있다. 찬바람이 털에 가르마를 타고, 얇은 실처럼 드러난 분홍빛 살을 훑고 지나간다. 그나마 해가 좀 있으며 고양이가 나오지만 대부분 어딘가 은신처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지낸다. 추위와 물 부족으로 몸은 붓고, 코트는 꼬질꼬질해진다. 고양이가 잘 먹어서 살이 쪘다는 오해를 받기 쉬운 때이다. 고양이 보호자가 되기 전에는 나도 잘 몰랐다. 가끔 만나는 고양이를 보면 추위에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그 예쁘고 동그란 눈도 옆으로 길어진다. 추워서, 눈이 부셔서, 추위로 얼굴 근육이 잔뜩 움츠러들어서 고양이 눈은 옆으로 길어진다. 영하 20도가 넘는 도시의 밤을 도대체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20210216_165130.jpg 2021년 2월

홍이한테 관심을 가지면서 주변에 고양이 기르는 분을 여럿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맺어준 인연이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양이들이 따뜻한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일러를 틀어 놓으면 열선을 따라 몸을 길게 늘이고 눕는다는 말을 들으니, 아기고양이 시절에 혹독한 겨울을 보낸 홍이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고양이가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털도 복슬복슬 많고, 밖에 사는 동물들이 겨울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20210212_110308.jpg

춥게 사는 동물들에게 마음에 쓰인다고 모든 밖에 사는 동물을 집으로 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고양이는 다르다. 맹자에도 적혀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 소는 잡아먹지 못한다. 그 존재를 알게 되면 그럴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럼 모르는 소는 괜찮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해 보았다. 안타깝지만 멀리서 난 사고와 내 가까이에서 난 사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이해했다. 나는 홍이의 눈빛, 몸짓, 소리, 온기, 활기, 성격을 알게 되었다. 홍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따뜻한 것을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 마음속에서 홍이를 데려와서 추울 때 따뜻하게, 무더울 때 시원하고 쾌적하게 지내게 해주겠다니 욕망이 활활 타올랐다.

20210216_111023.jpg 진눈깨비 내리던 날, 2021년 2월

홍이를 데려온 후 그 마음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50대의 오지랖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애지중지 자식 키우고, 학생들 신경 써 주던 마음이 고양이한테 확대된 것이다. 그 청명하고 순수한 눈동자를 보고 어떻게 외면할 것인가? 홍이로부터 시작된 사랑의 끈이 밀이, 빈이, 현이, 후추로 이어진다. 내가 지내는 곳에 있는 고양이한테 실타래가 굴러간다.


3월이 되니 훈풍이 불고 목도 덜 시리다. 밖에 나오는 고양이도 는다. 꼬질꼬질하지만 건강하고 아직은 몸이 덜 풀려 자못 점잖다. 추위를 이겨낸 고양이들을 응원한다. 추위를 이겨내느라 수명이 짧아지지만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추위는 보편적이지만 피할 수 있다. 피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고양이가 겨울을 잘 나도록 돕는 내가 괜찮은 사람 같다. 베풀 줄 아는 사랑 부자 같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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