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22_글로 키우는 고양이

by 홍홍

남편이 대체 돈이 얼마냐 드는 거냐고 볼멘소리로 물었을 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내가 감당할 수 있어. 내가 열심히 벌잖아.”

남편은 그저 덤덤히 듣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글 써서 좀 더 벌거니까.”

이렇게 큰소리쳤지만 사실 마음속엔 걱정이 가득하다. 집고양이 수명이 20년이라고 봤을 때 홍이가 20살이면 내가 70이다.


“당신 국민연금 80만 원, 내 연금 180만 원, 농사지어서 연봉 300만 원, 글 써서 인세 받으면, 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연금도 좀 있으니까.”

은퇴 후에 몇억이 필요한지,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 정보가 차고 넘쳐 얼추 들었는데, 두 사람 살기에도 빠듯해 보이는 액수이다. 월 260만 원 정도의 연금이면 살 수 있을지, 과연 농사지어서 연봉 300은 만들 수 있을지,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지 그려보는데 한마디가 더 날아온다.

“땅도 없으면서 말은 정말.”

20210403_094912.jpg 첫째고양이 홍이

4년 전 1월에 우연히 만난 고양이 홍이를 집으로 들일 때 걱정이 많았다. 선천적으로 폐가 안 좋고 피부도 엉망인 남편에겐 미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있잖아, 우리 결혼할 때처럼 문 앞에서 도저히 못 헤어지겠어. 홍이랑 같이 살아야 할 것 같아.”

시큰둥한 남편과 홍이를 반기는 두 아이, 군대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큰아들과 고양이의 동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마, 혹시 내가 군대 간 충격으로 고양이 들인 거야?”

휴가 나와 홍이를 보자마자 큰아들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얼버무린다.

“으응, 그런 이유도 좀 있지.”

“엄마, 현이는 내 부하로 만들래.”

제대하자마자 큰아들은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 휴가 나올 때 아기고양이였던 셋째 고양이 현이가 맘에 드나 보다. 독립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고양이가 과연 어설픈 예비역의 부하가 될까.

“현이한테 맞지나 마.”

20230810_173305.jpg

사람 다섯과 고양이 네 마리가 사는 삶은 매일 새롭고 재밌다. 하지만 난 9년 뒷면 은퇴를 하고, 애들 시집 장가, 집 마련 등 돈 들 일이 태산이다.

“저는 블로그 체험단 신청해서 거의 200만 원어치 상품을 받았어요.”

둘째 고양이를 내게 억지로 입양 보낸 동료가 양육비를 걱정하는 내게 해준 말이다.

“그래요? 나도 해볼래요. 어떻게 하면 돼요?”

물어물어 블로그를 개설하고,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고양이만 보여줄 수 있는 일상을 곁들였다. 이렇게 시작한 블로그가 나의 글쓰기 시작이었다. 어설펐지만 꾸준히 글을 올리니 이웃도 늘고, 체험단 기회가 왔다. 사료, 간식, 영양제, 화장실 모래를 허겁지겁 섭렵하고, 다행히 우리 고양이한테 잘 맞는 제품도 찾았다. 글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내겐 좀 더 큰 이유가 필요했다. 홍이를 사랑하면서 다른 고양이에게도 눈길이 가고, 자연스레 다른 동식물에도 관심이 갔다.

‘그래, 그거야! 덥고, 춥고, 배고픈, 위험에 처한 동식물의 상태를 알리고, 그리고 또 뭘 해야 할까?’

여기에 내 욕심도 조금 추가했다. 이참에 본격적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고 고양이, 동식물 관련 주제를 다루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으로 발전했다.

“우리 한 선생님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하시지. 이번엔 글쓰기야?”

분주히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또 한 소리 한다. 이번 일을 얼마나 오래 가나 보자, 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다.


20230819_092647.jpg 도담이

나이가 많아져 이젠 뭘 급히 하면 어지럽기도 하고, 눈도 금방 아프다. 홍이가 아무리 예뻐도 눈에 넣지 못할 지경이다. 예비 작가가 되면서 일요일도 없어졌다. 평일과 똑같이 일어나서 밥먹고, 고양이 똥 치우고, 양치질하고, 기미 안 생기게 얼굴에 선크림 찍어 바르고 또 집을 나선다.

“엄마, 고양이랑 행복할 거라면서 왜 매일 나가?”

“그러게나 말이다. 꼭 작가로 성공해서 너희 옆에서 글 쓸게.”

조금만 봐달라며 집을 나선다. 일곱 모두 성인, 성묘니까 하루쯤 알아서들 잘 보내겠지.


뭐가 그리 급한지 머리가 엉덩이보다 앞서 걷고 있는 한 여자가 카페 유리창에 비친다. 하늘과 4월 신록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그리로 오늘이 아닌 내일 행복하겠다고 매일 길을 나서는 사람이 지나간다. 익숙한 얼굴의 내가 있다.

20230818_223156.jpg 천천히 하시라니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평1_네가 없다면 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