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2_큰아들에게

정재학,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by 홍홍

누구나 처음이 있다. 첫아이의 엄마는 늘 처음 엄마다. 아직도 내가 맞이할 처음이 무엇일지, 많이 단련되었지만, 떨린다. 그리고 언제나 미안하다.


마주일기

네가 유치원생일 때 ‘마주일기’를 썼지. 일상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옮기기만 했을 뿐인데, 우리의 생각이 무척이나 기발했는지 선생님들끼리 돌려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와 그에 맞장구를 쳐주는 철없는 엄마였지. 여섯 살 너와 마주한 대화는 생생하게 남아 이사 때마다 잊었던 손님처럼 등장했지. 볼 때마다 한결같은 너의 어린 목소리가 가득했어. 희망이 가득했던 때였다. 그와 마찬가지인 시집을 발견하였을 때 엄마 눈이 번쩍했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는 어쩜 이토록 새롭고 아름다울까. 비 내리는 날 잠시 예각이 되었던 투명 잠자리의 날개가 제 각도를 찾아 비상하는 느낌이다. 빗방울 훌훌 털고 비행하는 맑게 씻긴 보드라운 날개같은 아이 목소리가 가득한 시집이라니.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조심스레 모시며 읽었다.


이 시집을 손에 쥐고 고향으로 갔다. 가방에 넣고 소리가 날아갈까 봐 꼭 안고 갔다. 내가 예닐곱살을 보낸 땅에서 조심스레 펼쳐 보았다. 비바람 부는 날씨였지만, 아늑한 고향 카페에 갇힌 글자는 숨은 쉬지만 멀리 도망갈 순 없었단다. 모두 내게 다가와 오래된 기억의 방을 열어 주었다. 너를 키우며 접혔던 얼굴이 점점 너그러워졌다. 내가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없어지는 시간. 마주 앉은 네 아빠만이 현실을 말해 주는 시간. 어린 너와 함께 맞이했던 수많은 ‘처음’을 상기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엿본다. 얇지만 빨리 넘어가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너와 노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응가하는 것보다 쉽게

너는 글자 공부를 많이 했지. 글자를 많이 공부했으니, 이제는 글자를 많이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살면서 너에게 「놀이터에 간 아빠」처럼 뜨끔한 순간이 많았는데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스물일곱 많은 엄마는 스물일곱 너에게 글 쓰는 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자주 내보이지. 그동안 글을 많이 써서 이제는 쉬고 싶다는 말을 듣고도, 그래도 계속 쓰지, 숨죽여 말하다가 여섯 살 아이에게 말하듯 큰 소리로 말했지.

“여기 숨 쉬는 글자가 있대.”

구하기 어려워 중고로 이천 원에 샀다는 누렇게 변색된 한국현대시집을 가슴께에 접으며 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 지금 쓰고 싶진 않지만, 글자를 놓을 수는 없는 네가 그제야 보였다.


아빠, 숨 쉬는 글자를 알려줘! (중략)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시는 우리를 꿈꾸게 하는 글자들이야. 시 속의 글자들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글자 수보다 훨씬 긴 여행을 하게 해주지. 많은 사람들 많은 사물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은 놀이를 할 수 있단다. 엄청 멋진 거지! 달팽이 속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매미 날개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기차 소리에도 글자가 숨어 있고 미끄럼틀 속에도 글자가 숨어 있단다. 시인은 그걸 찾아내는 거야.

―『글자의 생』 일부


시가 이토록 명쾌한 것이었니? 꼬마가 달팽이도 들추어 보고, 매미 날개도 들춰볼 것 같았어. 기차 소리에 숨은 글자는 어떻게 찾아야 하지? 가까운 미끄럼틀부터 찾아보자고 놀이터로 냅다 달려 나갈 것 같다. 늙어가는 이 엄마는 네 머릿속에 기발하게 떠오르던 기쁨의 소리가 다시 넘치길 바란다. 이 시대의 청년은 꽃을 피우는 일도, 열매를 맺는 일도 어렵지만, ‘기지개하듯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어. 너는 언제나 희망이다. ‘응가하는 것보다 쉽게 꽃을 피우’길 바란다.


아들아, 아직도 떨고 있니?

그럼 넌 악기가 될 자질이 충분해.


떨리는 것들은 악기가 될 수 있다. 악기가 될 의지가 없어도 이미 악기인지도 모른다. 냉장고의 온기를 담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온기를 담고 있었다면 그냥 비어 있었던 건 아니다. 냉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실내악 -냉장고 소리와 빈 꽃병 2중주』 일부


자란 시간만큼 채워진 너의 냉장고도 온기가 있다. 냉기를 품어야 하는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모습, 그렇게 흔들리며 떨던 모습. 냉기 품은 온기를 훅 끼치며 들어오던 날이 많았지. 이제 충분해. 네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었어. 소리내면 돼. 걱정하지 마. 엄마가 여기 있어.


우리는 어떤 시간 속에 있을까? ¿Como andas?

스페인에서 안부를 물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 대신 어떻게 걷고 있느냐고 물어. 이 물음에서 걷는 장소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걸어온 걸까? 너는 어떤 시간의 결을 걷고 있을까. 너를 만난 시간, 6월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어떤 시간은 나에게 공간입니다 / 오늘은 6시에서 나와 0시 8분으로 들어갑니다 // 물고기에겐 물이 공기고 / 사람은 가슴에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어야 숨을 쉽니다 / 그 구멍들로 사람들, 사물들이 드나듭니다 / 희한하죠 / 텅 빈 구멍을 드나들 뿐인데 느껴지다니 / 소녀와 소년이 만나는 것처럼 / 자음과 모음이 만나는 것처럼 / 악기가 악기를 만나는 것처럼 //

―『6월, 오후 6시』 일부


너의 목소리에 다시 건너가지 않아도 좋아. 나는 지금의 네가 좋아. 희망이 줄어들어도 좋아, 좀 더 분명해지고 있으니까. 평생 서로를 기억할 아들아, 때로는 ‘며칠이라도 빨래처럼 몸을 벗고 쉴 수 있다면 좋겠다’며 엄마라는 일을 쉬고 싶지만 앞으로도 ‘처음’을 선사해 줄 나와 같은 시간을 오래 걷고 싶다. 아들아, 꼬모 안다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양이22_글로 키우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