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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23_엄마는 엄만가 보네!

by 홍홍

딸 고양이 밀이 아프다. 위독하다. 서서히 마르고 활기가 없었다. 복막염을 극복한 뒤 늘 그런 모습이어서 잘 알아보지 못했다. 등이 칼등처럼 마르고 나서야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무게 2.4 킬로그램. 또다시 복막염이 도진 건 아니겠지?

예민한 밀이를 위해 병원 방문 두 시간 전에는 신경안정제를 먹여야 한다. 그런데 집에 한 알도 없다. 조퇴하고 안정제 한 알을 타러 병원으로 달려간다. 헐레벌떡 집에 와서 약을 먹이곤 두 시간을 함께 견딘다. 케이지에 넣고 냅다 병원으로 달린다. 지름길로 달린다. 평소라면 소리소리 질렀을 텐데 밀은 너무나 조용하다. 밀아, 정말 심각하구나.

피검사 결과는 복막염은 아니다. 복막염 진단 수치가 0.4라면 밀은 0.6이다. 이대로 집에 갈 수 없어 초음파를 봤더니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다. 한쪽 신장은 너무 쪼그라들어 제 기능을 못 하고, 다른 한쪽은 형체가 거의 없다. 신부전증이다. 만성신부전에 급성신부전증이 동시에 왔다. 며칠 안 남았단다. 이렇게 갑자기?

5일 정도 입원을 하고 수액을 맞아보자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밀을 병원에서 잃을 수도 있다. 예전에 어린 고양이를 산소방에 넣은 지 두 시간 만에 잃은 적이 있어서 절대 병원에 혼자 두고 가지는 않는다고 마음먹었다.

“보호자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의사 선생님의 의례적인 위로를 들으니 눈물이 났다. 이렇게 늦게 병원을 찾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듣기 부끄러웠다. 병원비를 내고 암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밀은 아무 소리 내지 못한다. 밀아, 어쩌면 좋아.


집에 오니 안정제 기운이 아직도 남은 것인지, 병원에서 피 뽑고 초음파까지 하느라 기운이 빠진 것인지, 밀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더니 급기야 요 위에 똥 두 덩어리를 얹어 놓았다. 온 가족이 침울하다. 이렇게 너를 보내야 하는 건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힘없이 늘어진 밀 옆에 같이 누워 있는 일뿐이었다. 내가 옆에 있어야 밀이 잠들기 때문이다.

밀은 나의 이불 메이트이다. 내가 누우면 밀은 내 옆구리에 찰싹 붙는다. 밀이 꼭 붙어 자는 통에 나는 꼼짝 못 하고 한 자세로 잔다. 그래서 어깨에 병도 얻었지만, 나를 믿는 한 생명이 있어 좋았다. 그랬던 밀이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옆에 달라붙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부터 엄마가 널 계속 품어줄게.


한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마음속은 별의별 나쁜 생각으로 시끄럽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큰아들이 밀 옆에 근심스레 누워 있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엄마는 엄만가 보네!”

“당연하지, 이 자식아.”

급한 마음에 건강한 자식한테는 막말이 나온다. 다정하게 건넨 한마디였는데 말이다. 그러면 가짜 엄마였을까 봐. 아이가 심각하게 아프다는 것을 죽음을 목전에 두고야 알았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말로만 밀이 엄마였는지 자책하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슬그머니 문을 닫고 물러나는 큰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밀에서 더 다가간다.


그사이 새 공기가 들어오니 병원 냄새와 입에서 나는 단내가 새삼스레 더 짙게 느껴진다. 밀은 여전히 기운 없이 늘어졌다. 이대로 밀이 굳어버릴지도 몰라 두려운 밤이다. 사람으로 치면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던데, 예민한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탯줄이 붙은 채로 산책로에서 발견된 밀. 그때 힘차게 울어서 구조자를 불렀던 용감한 고양이, 밀아, 이번에도 어떻게 좀 안 될까? 아픈 자식 앞에서 엄마는 애원한다. 한. 번. 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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