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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1_네가 없다면 내가 아니야!

마중도 배웅도 없이, 박준

by 홍홍

네가 없다면 내가 아니야

마침표 하나 없이 여럿인 듯 하나인 듯 모여있는 문장을 보며 시의 새로운 형식을 이해한다. 우리말의 새로운 표현법을 만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릴 듯 어긋나는 삶의 모습을 아련하게 문장에 심어 두었다. 지천명과 이순 어디쯤에서 만난 젊은 시인의 문장이 내 마음속 오솔길을 걸어간다. 그 길을 뒤 따라가다, 옆에 있는 막내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네가 없다면 내가 아니야. 시인한테 방금 배웠어.’ 막내는 늙어가는 엄마를 토닥인다, ‘애를 많이 쓰시는군요!’


제1부 부르며 그리며 짚어보며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지각’. 처음 만난 시이다. 시를 오랜만에 읽기에 단단히 마음먹었다. 읽기 전부터 의심하며 생각한다. 알아챘다는 것일까, 늦었다는 것일까.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

나무, 호숫가, 비탈이 순환하며 나의 슬픔, 미안, 잘못의 대상이 되고 감정을 돌아보는 장소가 된다. 1, 2연은 지각이 알아차린다는 의미, 마지막 연에서 ‘늦은 일’이라는 표현에서는 늦었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시어가 가진 중의성을 한껏 살리면서도 의문을 남긴다. 대체 이르게 찾아오는 것이 어찌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는 말인가? 일찌감치 찾아왔기에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아직 시간이 있다는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는 탓일까?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고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늘 다가갈 마음가짐을 품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마음가짐이 어쩌다 손을 놓칠 경우에도 안심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도 외롭지 않게 만든다. ‘미아’에서는 ‘네가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너를 찾을 거야’라는 말로 안심시킨다. ‘아침 약’에서는 ‘멀리서 온 것과 / 더 멀리 떠나야 할 것이 / 한데 뒤섞입니다’라는 말로 현재 내게 있는 것과 멀리 떠난 것도 혼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쩌면 인생은 ‘부른다고 해서 오는 법은 없었지만 부르지 않아도 어디 가지 않던 큰 개’처럼 우리 곁에 있는 것 같다. 비단 인생뿐 아니라 웬수처럼 여겨지는 남편, 아직은 참을만한 자식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 딱 그 정도로 내 곁에 ‘화분’처럼 있기에 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빛을 심으려고 노력했나 보다.

하지만 ‘손금’에 이르러서 나에게 불안감을 준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폭풍을 만난다면, 간신히 폭풍을 피했다면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 ‘한쪽으로 생각을 몰아넣고 전부인 양 살아갈 거야. 기다리지 않을 거야.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 앞에서는 그냥 양손을 펴 보일 거야. 하나 숨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눈을 가까이 대고 목숨이니 사랑이니 재물이니 양명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을 필요는 없어. 이제 모두 금이 가고야 만 것들이야.’ 숨길 것도 없이 모두 보여줄 수 밖에 없고, 모두 금이 가서 하잘것없어지고, 다시 이으면 누더기가 될 인생이여!


제2부 묽어져야 합니다

힘을 빼고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예상하며 읽었다. 역시 그렇다. 많은 것을 갖고 이룬 것 같지만 여전히 ‘I’m still hungry!’를 마음속에서 늘 외치는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다. 아직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많아 뭐든 한 움큼씩 쥐기 때문이다. 손이 더 있으면 좋겠다. 눈도 더 좋았으면 좋겠고, 시간도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욕심껏 쥐면서 나에게 도움이 필요해 다가오는, 특히, 연장자나 선배는 어디 듣고 봅시다,라는 마음으로 대했다. 이런 가증스러운 내 마음이 꼭 들어 있다. ‘온전히 가져본 적 없어 / 손에 닿는 것이라면 // 무엇이든 한움큼씩 / 쥐고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나를 향해 / 다가온다 싶으면 // 일단 등부터 / 지고 보는 버릇도 / 이즘 시작된 것입니다 //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다시 하나씩 시작되며, 내가 딛고 있는 바닥부터 살피라는 조언에 뜨끔해진다. 여러 생각과 여러 욕심이 혼재하지만 ’물론 당장 하나의 글로 /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 널리 알려진 것처럼 / 다가오는 계절의 밤은 // 세상에서 가장 길며 / 짙으며 높으며 넓습니다// 내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봄밤이 떠오르는 시구이다. 어젯밤 라일락이 가장 짙었고 하늘은 맑고 높았으며, 홍이가 뛰어놀던 불암산의 숲은 여전히 넓기 때문이다.

뒤이어 등장한 ‘마음을 미음처럼’에서 툭! 하고 짧은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미음을 끓이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되작거리다가 체에 밭친다. ‘아시겠지만 진득하게 남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묽어져야 합니다 고개를 파묻습니다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 지금껏 무언가 진득한 것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묽었기에 이렇게 된 거야, 라고 생각하며 되직한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아니다, 그냥 더 묽어져 볼까, 하는 모험심에 붙들렸다.


제3부 겨울을 지나는 수련처럼

3부는 두고 온 장소, 가보지 못한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도 떠오르는 지명이 있다.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오0리 000번지 박0원. 5학년때 파주 탄현국민학교 6학년 언니와 펜팔친구가 되어 숱하게 편지를 썼다. 사진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았는데 내가 중2가 될 무렵 왕래가 흐지부지 끝났다. 언니가 고입을 준비하며 바빠졌거나, 편지가 지루해졌거나, 우리가 너무 자랐기 때문이었나보다. 지금도 가끔 언니 생각이 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찾을 수 없다. 다만 파주 출신 대학 동기가 건너건너 안다는 것 같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편지는 두 소녀의 문을 열고, 또 닫았다.


제4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떠나는 일요일 밤을 잡을 길은 없는 걸까?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던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학교 다닐 땐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성인이 되어서는 개그 콘서트다. 이 프로그램이 끝났다는 신호를 받으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재미가 사라져서, 이제는 자야 하고, 월요일이 성큼 다가와서이다. 스티비 원더의 ‘Part-time Lover’가 점점 작아질 때 우리는 모두 소파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갔다. 방으로 가는 길엔 마지막 소절이 사라지는지 꼭 확인했다. 아쉬운 것엔 왜 이리 집착하고 매달리는지. 그 아쉬운 마음을 만원짜리 한 장을 접어 모아두었다면 지금 부자가 되었겠다. ‘대신 목련처럼 희고 두꺼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지나간 햇수만큼 만원짜리 지폐를 넣어두면 되겠지’, 싶다. 아쉬운 일요일 밤을 보내듯 시집을 내려놓는다.


박준(2005). 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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