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8_큰아들과 기다림

by 홍홍

퇴근길엔 항상 저녁거리가 걱정이다. 오늘은 우리집 요리사인 막내가 외출한다고 하여 더 걱정이 컸다. 집에 거의 다 왔는데 큰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부대찌개를 끓인 건데 언제쯤 오냐는 내용이다. 거의 다 왔다고 하니 바로 준비하겠다고 한다. 이게 웬 일인가 싶다. 이제 큰아들이 거의 사람이 된 것 같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한창 속썩이던 시절이 스쳐지나간다.


살면서 나를 가장 그리고 오랫동안 화나게 했던 인물은 중학생 시절의 큰아들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내 마음이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봄에는 인도와 도로를 구분하는 쇠 난간을 뛰어 넘어 무단횡단을 하려다 난간에 다리가 걸려 떨어졌다. 얼굴이 먼저 떨어지면서 오른쪽 얼굴과 귀가 아스팔트에 갈렸다. 얼굴에 흉터가 남을까 노심초사하며 3주간 치료했다. 그 후엔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다 손등뼈가 부러졌다. 그래도 자기가 더 때렸다며 큰소리를 쳤다. 여름 방학하는 날마저 농구 하다 착지를 잘못해 손목을 다쳤다. 무더운 여름방학의 절반을 붕대를 감고 지냈다.


1학년 2학기 들어서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같은 반 친구와 작정하고 학교 으슥한 곳에서 싸웠다. 입술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졌다. 얼굴에는 멍이 들고, 옷에는 피가 말라붙었다. 그래도 녀석은 자기는 친구의 가슴에 내상을 입혔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퇴근하여 알게 되었는데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라 서둘러 응급실로 가 봉합을 했다. 1cm 깊이로 찢어졌다. 소독솜이 상처로 한참 들어갔다. 점심때 다쳤다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왼쪽 앞니가 살짝 흔들리고 통증이 있었다. x-ray를 찍어보니 치아를 감싸는 인대가 늘어났다. 이런 환자의 1% 정도는 신경도 죽어 이가 검게 변한단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입술 살이야 붙으면 되지만 앞니가 망가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1주, 2주, 한 달의 간격을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니로는 국수도 끊으면 안 된다는 엄포를 듣고 왔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해 12월에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아직까지는 상태가 괜찮다. 이제 석 달 후에 보자고 했다. 앞니로 음식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신경이 살 확률이 꽤 높단다. 휴, 한시름 놓았다.


밖으로 나와 시계를 보았다. 진료가 빨리 끝나 버스 환승할인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병원까지 타고 왔던 같은 번호의 버스로 되돌아가면 환승할인을 받지 못한다. 아들과 난 노원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노원역에서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노원역에서 집에 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가지는 20여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2-3분마다 오는 버스를 탄 뒤, 다시 7-8분 간격으로 오는 동네버스로 환승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을 아들에게 설명하며 엄마는 마냥 기다리는 것이 싫어 두 번째 방법을 많이 쓴다고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큰아들은 그냥 오래 기다리더라도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자고 한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얼마 기다리지 않아 한번에 가는 버스가 왔다. 우리 모자는 뒤편의 2인석에 기분 좋게 앉았다. “우리 아들 말을 들으니 버스가 금방 오네?” “엄마 내가 기다리자고 했잖아. 금방 오지? 그러니까 아들도 좀 기다려줘.” 그 말에 놀라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껑충 커버린 아들이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그동안 녀석으로 인해 쌓인 화가 안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들의 얼굴을 보니 지난 봄에 생긴 눈 밑의 흉터가 흐릿하게 보인다. 너도 크느라 힘들구나, 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아들의 찬 손을 잡아 주었다. 엄마 손길을 피하기만 하던 녀석이 가만히 있다. “알았어, 기다릴게.”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십년이 넘는다. 아들은 서서히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는 사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고기도 잘 굽고 스파게티도 곧잘 해서 내 저녁도 차려주는 어른이 되었다. 이런 생각에 젖어 집에 들어오니 구수한 부대찌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꼬들꼬들한 라면부터 집어 먹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라도 아들은 기다리며 옆에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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