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밝혔듯 나는 늦둥이다. 늦둥이라는 귀엽고 따뜻한 단어가 언젠가부터 자주 쓰여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른다.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나도 이제는 편하게 밝히지만, 내가 자랄 때는 그냥 부모님 나이가 많은 아이였다. 더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대신 걱정거리, 혹은 측은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간절하게 원한 아이도 아니었고, 어쩌다 생겨 도의상 낳으셨다고나 할까. 예전에 흔히 그랬듯 나이 차이가 큰 언니 오빠가 나를 많이 보살펴 주었다. 특히 하나뿐인 언니는 나의 유년기를 뜻깊게 밝혀주었다.
열다섯 살 차이 나는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재무부 공무원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대학 예비고사에 떨어졌는데 당시(70년대 초) 시골에서는 여식을 재수까지 시켜가며 대학을 보내는 분위기나 형편은 아니었다. 언니는 서울 외갓집에 살면서 가끔 집에 내려왔다. 언니의 존재도 대여섯 살 때부터 인식한 것 같은데, 가끔 만나는 언니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 내려온 날엔 어색해서 말도 못 시키다가 하룻밤 자고 나면 친해지고, 언니가 떠나는 날은 버스정류장에서 얼굴이 시뻘게지게 울었다. 오롯이 나한테 집중해주는 언니를 또 떠나보낸다는 것이 그렇게 슬펐다.
언니는 시골에서 늙은 부모님과 사는 내가 겪을 문화적 격차를 걱정했는지 올 때마다 책, 옷, 그리고 가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언니 덕분에 지금의 독서 습관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신화부터 위인전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사온 예쁜 옷도 많이 입혀서 시골에서는 돋보이는 존재였다.
중1이 되던 해에 언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카세트 녹음기는 내 인생을 바꿔놓은 선물이었다. 금성(지금의 엘지) 제품이었는데 고급스런 광택이 나는 메탈릭 블루색에 탄탄하고 균형감있는 모습이었다. 라디오, 테이프 재생, 녹음 기능까지 있고, 스피커가 2개나 탑재되어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배웠는데 선생님들이 들고 다니던 녹음기와 거의 똑같은 기종이었다. 선생님과 같은 기종의 녹음기를 구비하고, 언니가 사다 준 정철영어 테이프를 들으며 영어공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어린 동생을 위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지 감탄스럽다. 내가 그렇게 어린 동생이 있다면 똑같이 해줄 수 있었을까.
라디오도 나의 성장에 한몫했다. 초등생 시절엔 어린이 방송을 들으며 동요나 동화도 듣고 상식도 쌓았다. 예를 들어 화요일에는 김정문선생님이 나오셔서 동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시고, 수요일에는 식물전문가가 나오셔서 식물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셨는데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때 파인애플이 아나나스라는 식물에서 나온다는 것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아직도 기억한다. 9시 30분에는 시 낭송 방송을 들으며 한국시를 감상했다. 아나운서의 우아한 시 낭독과 초대 손님으로 나온 시인의 대담을 듣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때 많은 한국시를 외웠는데, 나중에 언니가 외국 시집도 사다 주어서 중학생 때 ‘황무지’와 같은 시를 읽으며 우쭐했다. 그리고 10시부터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듣는 말 그대로 밤을 잊은 성숙한 학생이었다.
그동안 AM라디오만 들었다면 언니가 사준 카세트 녹음기로 중학생 때부터는 FM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 채널이 두 배가 되면서 음악에 대한 지평도 넓어졌다. 주말에는 팝송 방송을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하며 나만의 테이프도 하나씩 만들었다. 그러다가 노래가 부르고 싶어 가사를 받아적게 되었는데, 이 노력이 나중에 영어듣기 실력으로 발전했다. 고등학교 때는 실기시험으로 영어 듣기평가가 반영되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카세트 라디오에서 시작된 영어에 대한 흥미를 계속 간직하여 훗날 나는 해외영업도 하고, 영어도 가르쳤다. 언니 덕분에 경제적 독립을 이룬 한 성인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엔 20대의 푸르른 청춘이던 언니가 올해 70이 되었다. 아직도 언니는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여전히 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준다. 난 뭘 해줄까. 조카들이 모두 가정을 꾸려 한시름 놓게 된 언니에게 작은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그래서 월말에 서울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서울에 살지만, 언니는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우리 집에 머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시내 호텔을 예약했다. 내가 언니가 사준 녹음기 덕분에 성장한 이야기는 흘리듯 한 번 했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 그리고 이젠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난 이제 다 컸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