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먹기 싫다는 거 강요하지 마세요.
급식지도의 딜레마
선생님도 매일같이 아이들과 같은 마음일 때가 있다. 바로 급식시간이다.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영양소를 고려한 따뜻하고 갓 만든 밥과 반찬을, 심지어 매일 새로운 것으로 주다니 급식은 내 직업이 내게 주는 최고의 복이 틀림없다. 딱히 편식하지 않는 표준 입맛 30대 교사에겐 매일의 메뉴가 거의 '매우 만족'이다. 어디 보자, 오늘은 된장국, 갈치구이, 심지어 잡채도 나오네. 후식은 오렌지구나 맛있겠다. 벅찬 감동으로 아이들 가장 뒤에 서서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옆자리 학생의 식판엔 밥과 오렌지 뿐이었다. 아예 배식자체를 그 두 개만 받은 것이었다.
'○○야, 이렇게만 받아온 이유가 있니?'
입이 뾰로통하게 나온 아이는 겨우 고개만 흔든다.
'선생님이 너 알레르기 없는 걸로 아는데 다시 받아올래?' 역시 입이 더 많이 나와서는 겨우 발걸음을 떼는 아이, 거의 멈춰있을 정도로 느리게 배식대로 향하는 걸음이 먹기 싫은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짧은 순간 나도 엄청나게 갈등했다. 그냥 눈 감을까? 근데 이 정도의 편식은 눈 감을 수가 없었다. 반찬 중 한 두 개를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밥과 과일만이라니, 당에 너무 길들여진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교 후, 옆반 선생님께 이 일을 얘기했는데 우려를 표하셨다. 아서라, 그러다 선생님 공격받아. 요즘은 애가 먹기 싫다는 거 먹게 해선 안돼. 큰일 나.
하긴. 전에 근무한 학교에선 교육청에서 오래 근무하셔서 민원에 빠삭하신 교감선생님이 급식시간에 선생님들에게 절대 아이가 싫다는거 먹이지 말라며 단속하고 다니시기도 했었지.
반대로 너무 많이 먹는 학생의 경우도 제지할 수 없다. 입맛에 맞는 반찬이 나왔을때 한번 정도 추가배식을 받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많이 먹는 학생들이 있다. 영양사 선생님이 아무리 총 열량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셨다고 해도 저렇게 과량을 먹으면 안좋을텐데 싶지만 그냥 둔다. 몇년 전엔 추가배식하려는 아이에게 다른 학년을 줘야 할 음식 양이 부족하다며 영양선생님이 거절하셨다가 험한 소리를 들으시기도 했다.
'저 교장선생님한테 가서 다 이를거에요!' 만약 아이의 부모님이 그 아이와 생각이 같다면 악성 민원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초등 교사의 '급식지도'는 이미 철 지난 화두이다. 편식하는 아이를 골고루 먹게 했거나 반대로 더 먹겠다는 학생들을 충분치 않게 줬다는 이유로 악성 민원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아동학대로 고발당한 전국의 교사들 이야기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덮고도 남을 만큼 차고 넘친다. 지금은 교사들을 더 나쁘게 괴롭히는 화두가 있어 급식지도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 되었고 또 이미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가 되었다. 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급식지도 하는 교사는 아이들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바른 식습관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이게 아동학대라고? 그래 좋아, 안 하면 나도 편해! 억울함이 울컥 올라오지만 더 발전시키지는 않기로 한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하지만 난 급식시간에 아이들을 보지 않을 수 없고 10년 이상 담임만 맡아온 내 눈엔 너무 잘 보인다. 아이들의 편식이 갈수록 빠르게 나빠지고 있고 이건 아이 취향의 문제로 존중될 정도를 넘었다는 것이. 한 10년 전에 김치를 안 먹는 아이를 지도했던 기억을 떠올리자니 마치 아름다운 동화같이 느껴진다. 김치'만' 안 먹는다니 지금 기준으론 유니콘 아닌가. 지금은 모든 반찬을 적어도 한 번씩 시도하는 아이는 글쎄 절반이 겨우 넘지 않을까. 저탄소식단의 날처럼 탄소를 적게 쓰는 식재료로 구성된 날에는(소고기는 배제되고 채소 중심의 반찬으로 구성된다) 밥 외엔 아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있다. 민원을 배제하고라도 편식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고 정도도 심해져서 한 명의 교사가 다 잡아주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이다. 같은 결로 비만과 과체중, 저체중 학생의 비율도 점점 늘고 있다.(올해엔 엔데믹 영향인지 작년, 재작년보단 비만이 더 줄어든 것 같긴 하다)
이제 나는 교실에서 올바른 식습관과 균형 잡힌 영양소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할 순 있지만 직접적으로 권하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오직 내 아이만 신경 쓸 수 있을 뿐이다. 아이들을 진정 아끼는 마음에서 바라건대 각 가정에서 아이들이 편식하지 않도록 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다. 장차 우리나라의 대들보가 될,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