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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Aug 10. 2023

애 안 낳아본 교사는 1학년 담임을 하면 안되나요?

어머님, 그건 수치심입니다.

 작가의 서랍안에 넣어둔 채 8개월동안 마무리를 짓지 못한 글을 이제야 꺼내어 보았다. 서이초 선생님, 그리고 많은 곳에서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고 계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글을 이어 쓸수 있었다.


벌써 12월이다. 학교의 12월은 무척 바쁘다. 생활기록부를 마무리 해야 하고 학기를 결산하는 각종 서류들도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바로 내년의 거취를 정하는 것이다. 이 치열한 눈치게임이야말로 12월의 메인 과업인 것이다.


 본교 근무 고작 1년차인 내가 무슨 선택권이 있겠는가, 점수가 높은 자들의 향방을 풍문으로 전해듣고 머리를 굴린다. 난 몇학년을 쓰는 것이 가장 유리한가. 얼마 전까지 내게 가장 하기 싫은 학년은 단연 1학년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파릇파릇했고 미숙하기도 했던 시절에 한번 해보고 나서 인생의 쓴맛을 느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애 낳아보세요!

 퍽 길게도 내 발목을 잡았던 이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해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는 20대. 결혼을 앞뒀으나 분명히 미혼이었고 엄마가 된다는 건 아직 먼 얘기라고 여기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 앞 마트 사장님이었다. 우리반 학생이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쳤다고.  두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른척했으나 횟수가 많아져 학교로 연락했다고. 머리가 아팠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다루나. 난 먼저 그 학생을 불러 물었다. 정말 이런적 있니? 학생이 시인했고 그제서야 나는 학생의 어머님께 조심스레 연락했다.


 평소 교양있는 말투를 쓰시던 어머님께서는 내 얘기를 듣고 점점 감정이 격해지셨다.

"우리애가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 있어요?"

"그 얘기 또 누가 아나요?같은 단지 엄마들도 알면 어떡하실 거에요?" 

"선생님, 우리 애한테 낙인이 찍히면 어떡하실거에요?"

"선생님도 애 낳아서 길러보세요. 키우는게 어디 쉬운가."


 그때의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내가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치라고 시켰나, 아님 훔쳤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나, 아님 적어도 훔쳤다고 걜 호되게 혼내기라도 했나, 어머님한테 자식교육좀 똑바로 하라며 훈계라도 했나, 반 학생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걸 알고서도 그냥 넘겨야 저런 소릴 안 듣는 걸까. 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무력감과 모멸감을 크게 느꼈고 통화를 마친 뒤엔 동료선생님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그 어머니는 학년 다 마칠때 제출하는 교육과정 설문지에도 '1학년 담임은 기혼의 40대 이상 교사로 해달라.'고 썼다. 마지막까지도 기어이 내 자존심을 꺾어놓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얼마 후 다행히도 학년이 끝나 그 아이와 무사히 이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안에 더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하필 그 해에 결혼했던 나는, 도저히 자녀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저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 대신 '나는 애를 낳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애를 낳으면 저렇게 예의도 염치도 없는 동물적인 모습이 되는구나,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부모가 되어선 안 돼.


 결국 몇년 후 나는 인생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고 내가 상담사 앞에서 꺼낸 문제는 바로 저것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지가 않아요.' 물론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때 나는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마음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은인이 되어주신 상담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어머님은 아이를 사랑해서 그런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신게 아니에요. 아이를 창피해하신 거예요. 수치심이 건드려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기땜에 선생님은 절대 그런 부모가 되지 않을 거예요."


상담 첫 회기에서 하신 상담사님의 저 말씀이 내 트라우마를 푸는 열쇠가 되었고 난 지금 여섯살 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드디어 '선생님도 애 낳아서 키워보라.'는 말에 맞설 자격이 생긴건가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상담사님 외에도 내 구겨진 마음을 펴주신 분이 있다. 그 때 1학년 부장님. 너도 애낳아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 펑펑 울면서도 반쯤은 정말 내가 애를 안 낳아서, 잘 몰라서 실수했나 의심하고 있던 나를 토닥여주시며 이런 말을 해주셨다.

"애 낳았다고 학부모님들이 다 이해되는거 아냐. 오히려 낳아서 길러보니 왜 저렇게 키우나 이해 안 될때가 더 많아."

 잘못이 아니라는 분명한 메세지를 담고 있던 그 말씀은 8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그 후에도 수치심이 건드려진 학부모님들의 날선 공격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게 수치심이라는것을 안다고 해서 내가, 그리고 다른 교사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몸이 고되고 마음마저 힘든 일이기에 학부모님들의 여러 힘든 마음-당혹스러움, 수치심, 죄책감-이 제대로 이름표를 달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로 교사에게 던져진다. 감정 쓰레기통이 된 교사는 괴롭다. 괴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내가 사람인지 쓰레기통인지, 심지어는 샌드백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아니, 쓰레기통이나 샌드백정도랑 헷갈리면 그건 그래도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자격이 없어서, 못나서 이런 소리를 듣는게 마땅한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도 나를 의심했고 사실 경력이 쌓인 지금도 그렇다.


 하루하루 업데이트되는 가슴아픈 소식에 뉴스를 보기 힘든 요즘, 뭐라고 포장하고 은폐해도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교사라면 훤히 그려볼 수 있어 마음이 아리다. 내가 쓰레기인가, 자격이 없나, 의심하는 젊은 선생님들께 그것이 선생님의 잘못이나 무능이 아니라고 손을 꼭 붙잡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말해드리고 싶다. 그때 그 부장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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