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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Jun 10. 2023

어린이와 브랜드

 딱 10년 전이겠다. 사회에 나온 지 3년도 채 안됐을 때였다. 그때 난 초등학생의 언어보다 어른들의 언어가 아직은 더 익숙했고 어른 세계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한마디로 곱고 꼿꼿했던 나는 3년차에 처음으로 저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아이나 남의 아이나, 아이들은 얘기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 중 아이들이 가장 말하기 좋아하는 건 자랑이 섞인 이야기이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동안 쌓아둔 자랑을 꺼내려고 아이들이 내 주변에 구름처럼 모였다. 엄마 미소는 아니고 이모 미소 정도를 지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한 아이의 이야기가 귀에 꽂혔고 나의 얼굴엔 미소 대신 불편함이 드리워졌다.

"선생님, 저 캠핑 갔다 왔는데 저희집 텐트는 코베●에요."

코베●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이 tv광고를 하던 브랜드였다. 다른 자랑은 다 흐뭇하게 들어주겠는데 자기 집 물건 브랜드 자랑은 들어주기 불편했다. 아이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그것말고도 이런 자랑도 했었다.

"선생님, 저 래●안 태권도 다녀요."

그때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10년도 넘은 낡은 아파트단지에 있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브랜드 아파트가 새로 생겨서 낡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과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는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난 그 아이의 이런 말들을 괜찮지 않게 받아들였다. 아이를 불러다 주의를  것까진 아니지만 학부모 상담주간에 엄마께 그런 얘기를 전했던 것이다. 학생의 어머니는 당황스러워 하시며 '그렇잖아도 저희도 그게 고민이었다. 저희부부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 아이는 어디에서 그런 걸 보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10년 후 2023년, 여섯살 난 나의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러갔다 온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는 스케치북에 할아버지 차를 탄 본인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최대한 자세히)그렸는데 차 바퀴에 쓰여진 b로 시작하는 자동차 로고가 나를 당황시켰다. 또, 아이는 인근 학군지 동네의 유치원을 다니는데 어느 날부터 유치원 차량을 타고 다니며 봤을 학군지 동네의 아파트들의 이름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그 아파트들은 물론 나의 마음속 욕망으로 자리하곤 있지만 아이 앞에선 맹세코!! 그런 얘길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 그 학부모님이 느끼셨을 당황스러움을 천퍼센트, 만퍼센트 이해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그런 말들을 엄마께 전하지도 말고 그냥 넘겼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그게 특별히 아이답지 못함의 증거도 아님을 내가 여섯살 아이를 키워 보니 알겠다. (최소 열살 이하)어린이들에게 브랜드는 그냥 뽀로로, 포비, 에디같은 '이름'의 의미라는 것을, 그걸 순수하지 못하게 보는 건 그 시절 학생의 주소를 의식했던 나, 학군지 아파트를 마음에 품은 나의 시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물론 아이들이 브랜드를 얘기할 때 '우열'의 개념이 전혀 없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아이들은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알로 사우루스와 티라노 사우루스 중에 누가 더 큰지를 매일같이 궁금해하지 않던가.


 그러니 부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에 우리들의 논리를 씌우지 말것을 당부드린다. 자극적이고 어느 정도 독자의 화를 돋구는 기사가 클릭수가 높이는데 유리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기사에서 '개근거지'라는 말을 보고 기함했다. 개근상이 없어지는 추세일뿐더러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을 퍼뜨리는 일을 어른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촉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논리를 착실히 학습할테니. 둔갑된 자극적인 언어에 혀를 끌끌 차기보단 아이들의 언어 그 자체에 귀를 오래 기울여주기를, 일단 나부터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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